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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글] 천국에서 악몽으로 그리고 필사의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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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글] 천국에서 악몽으로 그리고 필사의 탈출


 마우이 섬에서의 5박 6일

                                                  ------------------박지홍(휴스턴 거주)


나는 아내를 잘 얻어 공짜로 5박6일 일정으로 하와이에 가게됐다. 회사 10년 근속기념으로 제공된 하와이행 비행기표와 호텔, 휴스턴 공항에서 샌프란시코 까지 4시간, 거기서 하와이 마우이 섬까지 또 5시간. 비행기타는 게 곤혹스럽지만 그래도 떠나올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 행복하고 즐겁다. 특히 가족들과 함께 하는 여행은.


밤 10시 목적지인 웨스틴 마우리 리조트(The Westin Maui Resort)호텔에 도착을 했다. 오는 도중에 월마트에 들러 컵라면 빵 등을 사가지고 와서는 호텔방에 오자마자 허겁지겁 먹었다.


다음날은 새벽 6시에 일어나 아내랑 호텔 앞을 산책을 했다. 호텔 바로 앞이 파란 바다라 정말 영화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산책 후 하와이 왕조의 수도인 라하이나(Lahaina) 항구도시로 갔다. 호텔 앞 해변가  파란 하늘아래서 원없이 물놀이도 했다. 하와이에서 유명한 날참치를 각종 양념으로 버무린 포케와 과일을 얼린 아사이볼도 먹었는데  햇빛이 너무 뜨겁고 따가워서 피부가 금세 빨갛게 익었다.


셋째 날은 눈앞에서 거북이가 쉬는 걸 직접 볼 수 있는 호오키파 비치 파크(Ho’okipa Beach Park)와 할레아칼라 국립공원 정상에도 올랐다. 여기서 보는 일출이 세계에서 아름답기로 손 꼽는다는데  강풍주의보라 몸을 가루기가 어렵고 입속에 모래가 들어와서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내려왔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하와이섬  500마일 바깥에 태풍이 지나가고 그 태풍이 엄청난 재난을 일으키게 된다.


하와이 넷째 날 새벽5시에 깼는데 뭔가 이상했다. 굉음을 내는 바람소리가 들리고 정전이 되었는데 배가 고파서 사정이 괜찮다는 공항근처로 가기로했다. 호텔 주차장에서 만난 투숙객에게 물어 보니 도로에 신호등이 작동하지 않아 교통체증이 심하니 그쪽으론 가지 말란다. 


그래서 우린 인적이 드문 북쪽 해안도로를 통해 나가기로 했다. 이 길은 처음엔 꾸불꾸불하더니 곧 낭떠러지 도로가 펼쳐져 이렇게 위험한 도로를 운전해 보긴 평생 처음이었다. 알고보니 하와이 현지인들도 위험해서 이용하지 않는 길이란다. 어쨌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호텔방에 있느니 나온 게 낫다고 생각했는데 이때까지도 우리는 마우이섬에 어떤 일이 발생했는 지 알지 못했다. 그저 정전이라고 생각했다.


점심을 먹고 에덴동산(Garden of Eden) 이란 곳만 구경하고 호텔로 돌아가는데 멀리 할레아칼라 산 중턱에 불길이 보인다. 뉴스에 산불이 났다고 하던데 아직도 타고 있는 가보다 하며 아직 심각성을 모르고 가는데 갑자기 기나긴 차량행렬이 나타났다. 

2시간 걸려 겨우 500미터를 이동했다. 오늘 내에 호텔에 갈수 있을까? 뉴스를 찾아보니 호텔 길목에 있는 라하이나 항구도시에 불이 번져 온마을이 불에 타고 모든게 잿더미로 변해가고 있단다. 그리고 거기로 가는 모든 도로는 통행금지.  우린 오도가도 못하는 처지가 되어 완전히 멘붕이었다. 고민 끝에 24시간 오픈하는 대형마트 주차장에서 밤을 새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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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관광객들이 우리와 비슷한 처지가 되어 주차장을 가득 메웠다. 밤새 뉴스만 보다가 우리가 왔던 험악한 길로 돌아가기로 했는데 그 길도  미방위군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차량 통행을 막았다. 우린 다시 마트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이제 어쩌지 이러다가 집에 못가는 거 아니야 ? 호텔방에 두고 온 짐 가운데 큰애 지갑에는 운전면허증,  크레딧 카드도 들었는데 신분증 없이 비행기를 탈 수 있을지 모르겠다.


호텔방에 있는 짐을 찾을 수 있을까하고 하와이 경찰서에 갔더니 지금 현지 경찰서도 불에 타 없어졌단다. 경찰관의 소개로  우리는 피난민을 위해 오픈한 대피소로 갔다.


경찰서 근처 전쟁기념관(The War Memorial Sports Complex)에 마련된 대피소에 도착해 이름과 연락처를 작성하고 간이침대에 누으니 좀 살 것 같았다. 여긴 의사와 약사, 상담사 등도 상주해서 나도 호텔방에서 미처 챙기지 못한 혈압약 갑상선약을 처방 받았다. 점심도 주고 많은 자원 봉사자들이 베게 이불 세면도구 커피 피자 물 음료수 과일을 끊임없이 가져다준다. 새삼 미국의 구호시스템에 놀란다.

쉬고 있는데 대피소 직원이 자리가 부족하니 다른  대피소로 옮길 수 있냐고 부탁한다. 우린 렌트카도 있어 대피소를 나와 내일 떠날 비행기 체크인을 하기로 하고 공항에 갔다. 원래 온라인으로 할 수 있지만 항공사 시스템에 문제가 있어 직접가야 했는데 공항에는 어마어마한 인파가 줄서 있었다. 


(이건 뭐 전쟁 피난민들이 전쟁터를 떠나는 모양새다) 기다리면서 같은 처지에 놓인 네덜란드 여행객과 대화를 했는데 대피소 정보도 모르고 공항에서 밤새울 작정이라고 해서 우리랑 같이 대피소로 가자고 했다. 미국에서 태어난 큰애는 좋은 사람인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함께 하자고 제안하는 것은 옳지 않단다. 나는 한국에서 배운대로 행동했는데 새삼 세대차이를 느꼈다. 네덜란드 관광객들과 함께 새로 소개받은 대피소로 가니 마우리 지역교회였는데 화재로 집을 잃은 이재민이나 머물 곳이 없는 관광객 들에게 교회를 개방해 도와주고 있었다.


우린 교회 클래스 룸 하나를 배정 받아 쉴 수 있게 됐다. 지친 몸을 누이고 잠을 청하려는데 항공사에서 메세지가 도착했다. 아니 이럴 수가. 불과 1시간전 탑승권까지 받은 비행기가  취소가 되었단다. 그때가 새벽 1시, 다음 표를 예약하러 급히 공항으로 가니 경비원이 새벽 5시에  오란다. 막막한 마음으로 돌아왔는데 마침 항공사 예약사이트가 연결이 되어서 최대한 빠른 금요일 오후 1시30분 비행기를 예약했다. 이번에는 제발 취소 되지 않기를.


마우이 티비방송을 보니 60여명의 희생자가 생겼단다. 내가 떠날때쯤엔 사망자가 100명에  1000명이 넘는 실종자가 발생했다. 그렇게 아름다운 마을과 풍경이 이렇게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는 악몽으로 바뀌다니 믿을 수 가 없었다. 대피소에서 호텔로 가는 버스를 운행한다는 소식을 알려줬다. 하지만 그게 마지막 버스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더 기다리니 주정부 관리가 나와 마지막 버스 2대를 운행하니 가족 중에 한사람만 버스에 타란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 버스를 타고 호텔에 가는데 화재로 완전히 잿더미가 된 마을과 건물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불과 며칠전 우리가 걸었던 아름다운 거리와 건물들이었다. 전기가 나간 어두운 호텔 계단을 뚜벅뚜벅 9층까지 올라가 묵던 방에 도착했다. 휴대폰 불빛에 의지해 짐을 챙기니 내 몸은 하나인데 가방은 네개, 결국 가방하나는 포기했다.  


꿈인가 이 지상낙원이라고 불리는 하와이에서 살기 위해 탈출을 준비하는 이 상황이 현실 같지가 않았다. 어서 이 악몽이 끝나기를. 아침 5시에 깨서 버스 출발지에 가니 벌써 10여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버스가 원래 오기로 했던 8시반이 아니라 10시에 온단다. 버스가 10시에 오면 겨우 시간 맞춰 1시반 비행기를 탈 수 있는데 또 늦어지면 큰일이었다.  9시경 갑자기 호텔 직원차량이 우리 앞에 서더니 5명만 먼저 타란다. 맨 앞그룹에 있던 나는 운좋게 마지막으로 차에 올라 무사히 공항에 도착해 가족과 재회할 수 있었다. 


줄 서서 기다리는데 하와이 한국 영사관 직원이 우리에게 본토에서 왔는 지 질문하며 도움이 필요한 지 물어왔다. 우린 시민권자이니 다른 한국 관광객들을 도와 주라고 했다. 이래서 나라가 힘이 있고 잘살아야 한다. 그래야 해외에 나왔다가 재난을 당한 국민들이 혜택을 볼 수 있다. 한참 걸려 비행기 탑승구 앞, 어제밤부터 먹지 못했는데도 배고픔을 모를 정도로 긴장을 했다. 탑승을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가 탈 비행기의 기장이 나오더니 하와이에서 일어난 불행한 재난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 승객들의 힘듦과 어려움을 잘 알고 있으니 최선을 다해 안전하고 편하게 모시겠다며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 큰박수를 받았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그다음에 마침내 도착한 휴스턴, 집에 온 우린 안도감 속에 깊은 잠에 빠졌다.


재난을 겪어보니 그저 말과 마음으로 위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도움을 줄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게 불타버린 현장에 무슨 운명의 장난으로 우리 가족이 있게 됐는지…

극심한 스트레스와  탈출을 위한 육체의 혹사가 회복을 더디게 한다.  하와이 100년만의 최악의 화재, 그 참혹한 현장에 있던 나에겐 오래도록 아픈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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