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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덤으로 얻은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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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덤으로 얻은 친구

작은 죄의 댓가로 24년을 어둠에서 보낸 틴구옌을 떠 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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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구옌(Tin Nguyen 베트남계 이민자. 41세)은 재작년에 20년 넘는 불법이민자 집행국(ICE)에서 풀려났고, 작년에 드디어 추방명령에서 자유로워져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는 신분을 얻었다.  


18세 때 저지른 경미한 범죄 하나 때문에 수십년 젊은 시절을 옥살이로 보내야했던 사연을 듣는 내내, 기자는 빵 살 돈조차 없었던 장발장(Jean Valjean)이 7명의 조카를 먹이려고 빵집에 침입해 빵 몇 개를 훔쳤다가 징역 19년이라는 엄청난 형벌을 받았던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을 머리에서 떨궈낼 수가 없었다.


식료품점에서 샌드위치를 훔치다 경비원에 의해 경찰에게 끌려간 불법체류자 신분의 젊은 베트남인 틴구엔은 그후로 24년간을 감옥과 ICE에 번갈아 투옥되며 수십차례의 재판을 통해 여덟차례의 추방명령을 번갈아 받는 위기 속에서 절망의 젊은 시절을 허비해야만 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추방명령은 당시 미국과 적대국이었던 베트남으로부터 수용허락이 안 떨어져 성사되지 않았고, ICE의 장기 투옥자로 남아 베트남으로 추방이 가능해진 시점(2008년 부시 대통령 재임시)에는 주지사에게 보낸 청원서가 받아들여져 추방 직전에 명령이 취소되는 등 몇 차례 아슬아슬한 위기에서 벗어나는 막다른 인생을 반복했다. 당시 그의 아내는 만삭의 몸으로 매일매일을 중국라면으로 끼니를 떼우며 겨우 목숨만을 부지했고, 가족을 위해 어떤 일도 못하는 가련한 신세의 틴구엔은 갸날픈 아내의 몸에서 태어난 딸을 키워야 한다는 사명 하나만을 의지하며 자살 충동에서 가까스로 탈출할 수 있었다는 얘기를 테스티모니를 통해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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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훈또스가 '경미한 서민경범죄자를 중범의 피의자로 몰아가는 텍사스 정부의 법안'을 사례로 들며 설명회를 가진 행사에서 틴구옌을 테스티모니 당사자로 초청해 한인회관 연단에 올렸을 때, 기자는 작은 체구의 표정에서 흘리는 그의 칠흙같았던 시간들이 결코 남의 일같이 여겨지지가 않았다. 비록 자유의 몸이 된 결말을 얘기했을 때는 청중들로부터 박수를 받기도 했지만, 오랜 세월 기약없는 암흑 속에서 보낸 시간의 끝자락에 뭔가 다른 결론이 있어야만 했다고 생각한 기자는 행사 주최자인 신현자 사무총장에게 허락을 받고 연단에 올라 기자가 눈 앞에서 겪었던 비슷한 사례를 소개하는 기회를 얻어냈다.


2년 전인가, 평범한 서민으로서의 필자는 개스 스테이션에서 계산대 직원으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흑인청년인 고객 한명이 자주 진열대에서 물건을 훔치는 모습을 비디오 화면을 통해 목격했고, 한 두번은 주의를 주며 적반하장으로 덤비는 그에게 몸싸움으로 대항하기도 했었다. 그럭저럭 그와의 대치상태를 모면해 가던 중에 어느날은 그의 손목에 수갑이 채워진 채 경찰의 손에 이끌려 필자와 마주한 일이 발생했다. 인근 식료품점에서 절도행위를 벌이다 경찰에게 발각된 흑인청년은 필자가 일하는 개스 스테이션에서의 절도행각 소문을 확인받기 위해 필자 앞으로 끌려온 것이었다.


그가 그의 앞으로의 인생에 어떤 조치가 내려질 것인지는  오로지 내 입에 달려 있었고, 나는 당연히 그가 물건을 훔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고 경찰에게 말했었다. "이게 한국 사람들의 '작은 죄는 못 본 척' 지나쳐주는 인지상정의 습관"에서 기인된 행동이었다고 연단에서 말했고 필자의 경험사례를 듣고있던 청중들은 우뢰와 같은 박수로 필자를 환호했다.


환호섞인 박수를 받자고 자진해서 연단에 오른 건 아니었고, 다만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범죄에 마땅한 벌이 있어야 하겠지만 지나친 벌로 인해 인간 자체의 인생을 피폐하게 만드는 '미국의 범죄자를 다루는 현실'을 이해시키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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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나름의 테스티머니를 마치고 테이블로 돌아가던 중에 틴구옌이 나를 불러세웠다. 잠시 서로를 주시하던 중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은 깊숙한 포옹에 다다랐다. 그 어떤 한 마디도 나눠갖지는 않았지만 서로는 무슨 말을 하고 싶어했는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서로를 깊숙이 껴앉았던 자세를 풀고나서 둘은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자연스럽게 친구가 됐고, 앞으로 고난의 이민생활을 함께 영위해나간다는 무언의 약속을 주고받으며 친구를 얻은 기쁨의 미소를 서로에게 띄워보냈다.


이날 내가 확인한 한가지 사실은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짓고도 그 잘못이 거론조차 안되는 현실이 고국에서 자인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작은 죄의 댓가가 중범죄자로 낙인찍혀 20년을 어둠속에 갇혀 겨우 빛을 보게 된 틴구옌의 인생행로를 엿보고 난 뒤, 결코 가볍지 않은 죄의 벌이 언제 어떻게 공정(?)하고 상식(?)적으로 내려질 것인지가 되게 궁금해졌던 찰나에 씁쓰레하게 봉착했던 순간이었다.

<임용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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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를 받자고 자진해서 연단에 오른 건 아니었고, 

다만 인간이 저지른 범죄에는 마땅한 벌이 있어야겠지만 

지나친 벌로 인해 인간 자체의 인생을 피폐하게 만드는 

'미국의 범죄자를 다루는 현실'을 이해시키고 싶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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