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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평통 20기 미주협의회장단의 쿠바 방문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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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평통 20기 미주협의회장단의 쿠바 방문기-하>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 혁명에 동참했던 체 게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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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김동수 민주평통 OCSD협의회장의 기행문 형식의 글이며 박요한 휴스턴협의회장의 요청으로 저작권자인 월드코리아와 기고인인 김동수 협의회장의 승락을 받고 2부작으로 게재하게 됨을 알려드립니다.<코리아월드 편집국> 


 

아바나로 오는 도중 핀카 비히아에 있는 헤밍웨이 고택을 찾았다. 헤밍웨이가 한때 살았던 이 집은 지금은 박물관으로 돼 관람객을 받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이 집을 둘러보고 또 소설 ‘노인과 바다’의 배경이 된 코히마르 어촌 마을도 돌아봤다. 박물관에는 당시 헤밍웨이가 낚시용으로 썼던 배도 전시돼 있었다.


헤밍웨이는 술과 여자, 낚시와 사냥을 좋아하고, 많은 글을 쓰고, 호화로운 삶을 살았지만 62세 때 건강악화에 따른 우울증으로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나는 그의 삶을 되짚어 보며 일시 감상에 젖어 들었다.

우리 일행은 아바나로 들어와 오바마 대통령이 식사하고 지난 12년 동안 24명의 대통령이 와서 식사했다는 산크리토발 식당을 찾아 점심을 들었다. 식당은 바닷가 옆에 근사하게 세워진 파세요 델 프라도 호텔 안에 있었다.


쿠바는 관광 사업을 확충하려는 쿠바 정부의 의지로 인해 꽤 좋은 호텔들이 상당히 많이 들어서 있었다. 이어 우리는 아바나 구시가지 투어에 나서서 스페인 식민지 시대 때 지어진 아르마스 광장, 샌프란시스코 광장, 비에하 광장, 카데드랄 광장을 걸으며 더 많은 쿠바의 역사를 체험했다.


쿠바는 레게 뮤직의 원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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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가 오래 머물렀던 호텔 Ambos Mundos와 작은 플로리다라는 뜻의 floridita bar에도 들어가 보았다. 거기에는 젊은이들로 꽉 찼으며 생음악이 귀를 즐겁게 해주었다. 사실 쿠바에는 많은 곳에서 레게 뮤직이 공연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공산주의 국가이면 서도 이들이 얼마나 예술을 사랑하는지 열정을 충분히 느끼게 했다.

쿠바는 국토 면적이 남한 땅 비슷하지만, 인구는 1천150만 명, 하바나에는 약 200만 명 이 산다고 한다. 남한의 인구가 쿠바보다 4.5배 더 많은 것이다.


다음 날 아침은 광복절 78년이 되는 날이었다. 우리 일행은 1920-30년대에 만들어진 옛 미국 포드 폰티악 오픈카 7대와 밴 1대에 나눠타고 센트로 아바나를 지나 혁명광장으로 갔다. 혁명광장에는 혁명탑과 공산당 본부건물, 체 게바라의 부조가 크게 그려진 건물이 눈에 띄었다. 체 게바라는 쉽고 편하게 살 수 있었지만, 전체 생애를 쿠바뿐만 아니라 남미의 여러 나라들과 아프리카 콩고까지 찾아가서 민중을 위한 혁명을 완성하려고 했던 인물이다.


나는 작년 아르헨티나를 방문했을 때 체 게바라에 대해 들은 것도 있어서 더욱 흥미가 있었다. 그는 원래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의과 대학을 졸업한 의사였지만 친구와 함께 남미 전역을 모터사이클로 여행하면서 사회주의에 관심을 두게 된다. 많은 노동자와 인민이 어렵게 사는 것을 보고 또 부가 제한된 극소수계 귀족층에 분배되는 것을 보고 사회주의 혁명에 끌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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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중에 멕시코로 피난 가 있을 때 마침 쿠바에서 멕시코에 피해와서 사는 피델 카스트로와 마음이 맞아 하룻밤 사이에 혁명 동지가 됐다. 그 후 그는 무력으로라도 인민의 권리를 쟁취해야 한다는 신념 아래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 혁명에 동참했다. 1961년 쿠바 혁명이 방향을 잡아갈 때 그는 쿠바 시민권을 받고 초대 산업 장관, 은행 총재 등을 지내기도 했다. 하지만 1965년 피델 카스트로와 결별하고 쿠바를 떠난다.


그가 과테말라 게릴라전을 거쳐 볼리비아 게릴라 전투에 참여하다 정부군에게 잡혀 사살당할 때의 나이가 고작 39세. 파란만장했던 그의 혁명에 대한 신념과 열정은 사후에 그를 영웅으로 만들기도 했다. 지금도 쿠바와 남미 여러 나라에는 그를 영웅시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나는 체 게바라가 즐겨 썼던 모자를 하나 기념품으로 사서 아바나 시내 거리를 쓰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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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동포청이 임대료 전액 지원


아바나에서의 공식 행사로, 우리 일행은 아바나 한국 문화원과 한글학교를 방문했다. 장소는 좁고 더웠다. 하지만 102년 전 이곳 쿠바에 이민 온 선조들의 후손이 한국 문화를 지키기 위해 한글도 주 5일 수업하고 한국 문화 행사도 진행한다는 설명을 듣고 대한민국의 뿌리는 어디에 가도 없어지지 않음을 눈으로 실감했다. 열악한 환경이지만, 170명에 달하는 쿠바 현지인 학생들에게 약 3천5백 불 상당의 물품을 증정하고 서투른 한국어로 서로 얘기도 나누며 가족 같은 기분을 느꼈다.


쿠바 한국문화원 및 한글학교는 2014년 개원 당시, 임대료가 3천 불이었다. 재외동포재단 50%, 중미·카리브협의회가 50%씩 임대료를 충당하다가, 중미·카리브협의회의 부담을 점차 줄여갔다. 2022년 한국문화원 및 한글학교를 이전하면서 임대료를 2,000불로 줄이고, 현재는 재외동포청이 임대료 전액을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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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미카리브협의회는 이전 비용 및 리모델링 비용을 지원하고 있으나 아직 함께 모일 강당이 없어서 증축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쿠바한국문화원 및 한글학교 정호현 교장은 교실 앞마당에 지붕도 올리고, 조명도 달아 강당 및 K-POP 센터를 만들고자 하나 재정 문제로 엄두도 못 내고 있다고 고충을 밝혔다. 이에 우리는 협의회장과 자문 위원들이 조금씩 돕겠다고 마음을 모았다.

이날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구은희 상임위원은 우리나라 직지심경에 관해 설명하고 한글 교수법도 강의했다. 오후에는 쿠바 영사협력원으로도 일하고 있는 문윤미 쿠바 자문 위원의 안내로 쿠바의 가우디라고 불리는 미술관 같은 푸스터의 집(Casa de Fuster)도 방문하고, 럼주 박물관(Museo de Ron)도 구경했다.


저녁은 문 위원이 집으로 직접 초대해 줘서 쿠바인이 사는 것도 보면서 멋진 저녁 대접을 받았다. 쿠바에서는 외부인을 집으로 초대해 같이 식사하기가 그리 쉽지 않은 일 같이 보였다.


6일간의 쿠바 방문 기간 우리 일행은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특히 8월 14일 아바나에서 15명의 한인 후손 회장단을 초청해 저녁 식사를 했다. 이날 만찬에는 Antonio Kim 쿠바 한인 후손 대표자와 마르타 임 할머니도 참여했다. 밤에는 쿠바 내셔널 호텔 파리지엔 카바레에 가서 쿠바의 역사를 춤과 음악으로 표현한 Habana de Fiesta 쇼도 재미있게 보았다.

우리는 쿠바에 있는 우리 한인 후손들이 잘 지내고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약하며, 아쉬운 마음으로 쿠바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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