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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교육 헨리 8세의 결혼문제와 맞물린 성공회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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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8세의 결혼문제와 맞물린 성공회의 탄생

<영국27>


헨리 8세. 부인 6명 중 5명을 이혼-사형-사망-이혼-사형 순으러 갈아치웠기 때문에 영국의 역대 왕들 중에서 가장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폭군으로 인식된다.

이같이 그 스스로가 연출해 낸 일련의 궁중 스캔들이 워낙 선정적이고 자극적이고 흥미롭기 때문에 그가 이룬 위대한 업적은 관심 밖의 일이다. 그런다고 그 업적들이 과소평가 될 수는 없겠지.

1509년 18살의 나이에 왕이 된 그는 1513년 프랑스 원정에 나섰고 The Battle of the Spurs에서 프랑스를 굴복시켰다. 이 틈새를 이용해 북에서 스코틀랜드가 밀고 내려왔다. 여기서도 스코틀랜드군을 격파하고 헨리 8세의 매부이기도한 제임스 4세를 전사시키고 승리했다.

이러한 승리에 이어 그는 해군을 창설, 다음 세대를 향한 해양대국의 기틀을 마련했다. 해군 인력도 증강시켰지만 무엇보다도 선박 제조에 쓰일 나무들을 함부로 베지 못하도록 법으로 막았다. 한 나무를 베면 12개의 묘목을 심을 정도로 해군력 증강에 정성을 기울였다.

그의 업적 중의 하나로 꼽히는 잉글랜드 특유의 종교개혁은 그의 결혼문제에서 시작된다. 에스파냐 왕국의 막내 공주로서 왕비가 되기 위해 잉글랜드로 시집 온 캐서린(Aragon of Catherine). 그녀는 예뻣다. 스페인 특유의 하얀 피부, 신비롭게 반짝이는 푸른 눈, 그리고 결이 고은 붉은 머리. 셰익스피어의 표현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창조물이었고, 토머스 모어에 의하면 이 세상에서 그녀의 미모를 따라갈 여자는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 첫 남편인 아서도 아름다운 신부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고백 했을 정도로 예뻣다고.

그런데 워낙 병약했던 황태자 아서는 결혼 5개월만에 죽는다. 시아버지 헨리 7세는 그 고운 며느리를 친정으로 돌려보내는 대신 둘째인 헨리와 약혼시키고 새 지참금이 오기를 기다리며 결혼식을 미루다 그도 죽는다.

그의 뒤를 이은 헨리 8세. 세상 모든 남자들이 그녀의 미모에 흠뻑 빠졌지만 정작 그는 별로였나 보다. 우선 자기보다 6살 연상이고 형 아서가 그냥 그 고운 얼굴만 감상하다 죽었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돌싱이지만 신체적으로는 아무 하자가 없는 신부라고 우겨 교황 율리오2세의 허락을 받아 놓았지만 그래도 찝찝했겠지.

그래도 헨리 8세의 첫 부인이 된 캐서린은 금슬이 좋아 여러번 임신했지만 공주 하나만 살아남고 모두 죽는다. 이 공주가 Blood Mary. 폐경기에 들어선 아내에게 더 이상 아들 후계자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핑계로 다른 여자들을 흘끔거리다 점찍은 여자가 왕후의 시녀 앤 블린 (Anne Boleyn)이다. 앤의 언니인 메리는 이미 헨리 8세의 정부였었고.

앤 블린은 전형적인 미인은 아니었지만 총명하고 우아함과 재치가 넘치는, 요샛말로 톡톡 튀는 여자였다. 어려서부터 프랑스 궁정에서 교육받아 프랑스어와 라틴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재원으로 루이 12세의 왕비 메리 튜더의 시녀였다. 그렇다가 오몬드 공작과 결혼하기 위해 잉글랜드로 돌아와 왕비 캐서린의 시녀가 된다. 그리고 가면 무도회에서 세련된 춤과 노래 실력을 뽑내다 헨리8세에게 찍힌 것. 왕의 눈에 든 이상 언니와 같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왕의 정부 대신 왕비가 되는 것에 목표를 두고 줄듯 말듯 헨리8세를 자극한다.

그녀를 포기할 수 없는 헨리8세는 캐서린과 이혼할 결심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때까지 구교를 신봉하던 잉글랜드에서는 이혼이 허락되지 않는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지금까지의 결혼은 레위기 20장 21절, 누구든지 그의 형제의 아내를 취하면 더러운 일이라고 한 그 구절을 이용하기로 했다. 20년 전 교황청이 허락했던 캐서린과의 결혼은 이 구절에 저촉되기 때문에 무효처리해 줄 것을 교황청에 청원했다. 교활하기는….

하지만 교황 클레멘스 7세는 단칼에 거절했다. 그 당시 교황은 막강한 세력을 휘두르던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5세의 눈치를 보는 처지인데 캐서린은 카를 5세의 고모였기 때문이다. 애가 탄 헨리 8세는 추기경 토마스 울시를 로마로 보내 교황을 설득하려 했지만 별 소득이 없었고 그렇다 1534년 추기경이 죽는다.

그의 뒤를 이어 권력을 잡은 토마스 크롬웰은 한가지 해결책을 내놓은 것이 이른바 수장령(Acts of Supremacy)이다. 앞으로 잉글랜드는 로마 교황청과의 외교관계를 끊고 잉글랜드 왕은 잉글랜드 교회의 수장을 겸한다는 법령을 선포한 것.

의회는 이를 순조롭게 통과시켰고 이로써 영국의 성공회는 교황청의 간섭 없이 독자적으로 운영되는 이른바 종교개혁의 하나로 여겨진다.

이 새로운 수장령 법에 의해 헨리는 캐서린과 간단하게 이혼하고 앤 블린은 그의 두번째 왕비가 된다.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처사에 당황한 교황 클레멘스7세는 서둘러 헨리와 캔터베리 대주교를 파문했지만 아무 소용은 없었다.

잉글랜드의 수도원은 대거 정리되었고 캔터베리 대주교인 토마스 크랜머를 선두로 잉글랜드 교회는 개혁의 물꼬를 트게 된다. 그 첫 사업으로 전국에 산재한 교회에 영어 성서 한 권 씩 비치, 누구나 성서를 읽을 수 있게 된 것. 그 후에는 성화와 성상은 치워지고, 교회에서 성경을 낭독할 때는 반드시 영어 성경을 사용하도록, 성만찬의 떡과 잔에 모든 신도가 참여할 수 있도록, 성직자도 결혼할 수 있도록 …. 앞으로 기회가 되면 좀 더 자세히 살피기로 하고 오늘은 헨리 8세의 개인적인 결혼문제 때문에 생긴 성공회이지만 기독교 측면에서 봤을 때는 제 3의 종교개혁으로 간주된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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