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륜아, 불량남편, 폭군, 그러나 빛나는 군인 리처드 I > 컬럼

본문 바로가기

컬럼

문화·교육 폐륜아, 불량남편, 폭군, 그러나 빛나는 군인 리처드 I

페이지 정보

본문

<영국10>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잉글랜드 왕 헨리 2세는 아키텐 공작의 상속녀 엘레오노르와 결혼을 했다. 그녀는 헨리2세 보다 10살 연상의 이혼녀였지만 미녀였고 장차 그녀가 물려받을 땅은 당시 프랑스 왕이 가진 땅보다 훨씬 넓었다. 전 남편인 프랑스 왕 루이 7세와 엘레오노르는 촌수로 따지니 10촌. 그래서 교황에게 근친상간을 핑계로 혼인 무효 판결을 받아낸다. 그리고 판결받은지 8주만에 재혼한다. 그런데 재혼한 헨리 2세와는 더 가까운 8촌 사이.


이 둘 사이에서 13년에 걸쳐 5명의 왕자와 3명의 공주가 태어난다. 공주들은 모두 유럽으로 시집보내 시칠리아, 독일, 카스티야까지, 그의 망강한 영향력을 끼쳤다. 그리고 스코들랜드의 충성서약을 받아내고 아일랜드를 침공, 속국으로 만들었다. 5명의 왕자 중 장남은 일찍 죽었고 둘 째 헨리에게는 잉글랜드 왕과 노르망디 공작과 앙주 백작의 후계자로 지명했다. 셋 째 리처드에게는 아키텐을 상속했다.

헨리가 5살되던 해에 어머니의 전 남편인 프랑스 왕 루이 7세와 그의 두 번째 왕비 사이에서 태어난 2살배기 마가리트 공주와 결혼 시킨다. 따져보면 피는 섞이지 않았다 해도 소꿉장난도 아니고…쯧. 헨리의 할아버지에게서 뺏은 땅을 놓고 두 가문이 분쟁 중이었는데 이 둘을 결혼 시킴으로써 그 땅을 2살 신부의 지참금 형식으로 돌려주기 위한, 말하자면 정략결혼인 셈.

헨리가 15살이 되던 1170년에는 아버지 헨리2세와 공동왕이 된다. 이로써 후계자 구도는 확실히 다져지기는 했지만 실권은 없었다. 아버지 헨리 2세는 오로지 막내 존만 챙기고 다른 자식들에게는 무관심. 이에 불만과 위협을 느낀 젊은 헨리는 두 번에 걸쳐 반란을 일으켰다. 여기에 다른 형제들과 어머니 엘레오노르도 합세하고.

첫 번 째 반란은 아버지가 용서했다. 두 번 째는 반란 중인 헨리가 이질에 걸려 죽는다. 죽기 직전 아버지가 자기에게 와서 자신을 또 용서해 줄 것을 간청했으나 이번에는 아버지도 몸을 사린다. 혹시 함정이라도 파 놨을까봐. 그래서 가는 대신 용서의 징표로 자신의 반지를 보내며 절규한다. “넌 날 참 많이도 괴롭혔지. 하지만 얼마던지 더 많이 괴롭혀도 좋으니 그저 살아만 있어다오” 그러나 28세의 아들 헨리는 그 반지를 움켜 쥔 채 조용히 눈을 감는다.

아들을 잃은 헨리 2세는 상속 구도를 다시 짠다. 리처드는 죽은 형의 몫이었던 노르망디, 앙주, 잉글랜드를 갖고 아키텐은 막내 존에게 양보하라는 것. 리처드는 어려서부터 어머니와 함께 아키텐에서 자랐기 때문에 태어난 잉글랜드보다 더 애정하는 곳이 아키텐인데 이곳을 포기하라니.
불복한 리처드는 아버지의 철천지 원수인 프랑스의 필리프 2세와 동맹을 맺고 반란을 일으켰다. 수세에 몰린 아버지 헨리 2세는 평소에 사랑을 퍼붓던 막내 존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그 역시 반란에 가담한 것을 알게 되자 쓸쓸히 병사한다.

이제 리처드 세상이 온 것. 그는 플렌테저넷 왕령을 모조리 독식하고 잉글랜드의 왕이 된다. 왕이 된 첫 작업으로 그동안 그를 도와 아버지와 맞서 싸워준 공신들을 의리없는 비열한 배신자로 몰아 모조리 숙청해 버린다. 뇌물을 들고 온 유대인들도 학살하고. 그러면서 제 3차 십자군에 참전하기 위해 세금을 왕창 매겨 국민들의 원성을 샀다. 그리고도 모자라 매관매직도 하고 왕실의 보물도 팔았다. 그 당시 새로 발굴된 아서왕의 엑스컬리버 보검은 배 19척과 바꿨다고.

10만 대군을 이끌고 오던 독일의 노황제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가 어이없게도 강을 건너다 실족사한다. 찬 물에 심장마비였거나 갑옷의 무게 때문인지 헤엄쳐 나오지 못했다고. 이로써 대부분의 독일군은 싸우기도 전에 귀환했고, 프랑스의 필리프는 참전한지 4개월만에 본국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그 치열했던 3차 십자군 전쟁의 지휘권은 잉글랜드의 리처드 1세에게 주어졌다.

키 196cm에 떡 벌어진 어깨가 일품인 늠름한 골격. 그 당시로는 드물게 우람한 체격과 한번 붙으면 끝장을 내고야 마는 끈질기고 포악한 성격, 게다가 낄낄빠빠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대담한 전술. 그는 패륜아, 나쁜 남편, 폭군이었을지언정 전장에서는 용맹스런 무사이자 타고난 지휘관이었다.

적장 살라딘 역시 리처드 1세와 맞먹는 용장이었다. 그러나 리처드가 덴마크산 도끼와 칼을 휘두르며 지나갈 때는 마치 홍해가 갈리듯 이슬람 병사들이 피하기에 급급했고 그렇게 휩쓸고 지나간 곳은 추수를 끝낸 들판처럼 이슬람군의 시체가 즐비했다. 이를 목격한 살라딘은 ‘그는 사람이 아니라 사자의 심장을 지닌 악마다’라고 하여 사자심왕 리처드 1세라는 별명을 얻는다.

리처드 1세는 예루살렘 주변의 해안 도시를 공격해서 탈환했지만 정작 예루살렘은 정복하지 않았다. 그의 계산으로는 정복해 봤자 유지가 어려워 또 침공을 당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라딘과 평화협정을 맺는다. 주변의 해안 도시는 기독교인에게 넘기고 예루살렘은 빼앗지는 않을테니 대신 순례자들의 안전은 허용하라는 내용이다. 그리고 퇴각하면서 한마디 남긴다. “협정 유효 기간은 3년이다. 그 후엔 다시 와서 예루살렘을 빼았겠어.” 이에 대한 살라딘의 대답도 멋지다. “만약 예루살렘을 넘겨줘야 한다면 기필코 너의 손에…”

그리고 서둘러 귀향길에 오른다. 전쟁을 하는 척만 하다가 일찌감치 퇴각해 버린 프랑스의 필리프 왕이 잉글랜드를 침공했기 때문이다. 십자군 전쟁에 참여하기 전에 맺은 불가침 조약을 어긴 것도 모자라 동생 존과 손을 잡고서. 그런데 귀향길에 태풍을 만나 오스트리아의 감옥에 갇힌다. 이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15만 마르크를 내고 그를 데려온다.
이러한 그의 무용담은 아랍의 용장 살라딘과 더불어 중세 기사도의 전설이 되어 여러번 영화로 재현되었다. 리처드 1세의 무용담에 흑기사, 아이반호, 로빈훗 등을 양념으로 곁들여서.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회원Login

회원가입
이번호 신문보기 더보기

회사소개(KOR) | 광고&상담 문의
9219 Katy Fwy #291. Houston TX 77024
TEL. 713-827-0063 | E-MAIL. houstonkyocharo@gmail.com
Copyright © The Korea World News All rights reserved.
Developed by Vanple Networks Inc.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팝업레이어 알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