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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교육 페스트가 번지는 와중에도 승전한 흑태자 에드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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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16>

자신들의 목숨을 담보로 킬레 시민을 살리겠다는 6명의 지도자급 인사들. 아, 본래는 7명이었는데 그 중 한명은 전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이 6명의 사형은 왕비인 필리파(Philippa of Hainault)의 태교를 빙자한 간청으로 집행 되지 않았다. 필리파 왕비는 임신한 몸으로 전쟁터까지 남편을 따라다닐만큼 금술이 좋았나보다. 자식도 많다. 16세 때 두 살 위인 에드워드 3세와 결혼하여 모두 8남 5녀를 두었으니까. 그래서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도널드 트럼프, 힐러리 클린턴, 버럭 오바마까지 이들 부부와 가는 줄로 연결되는 후손들이라나 뭬라나.

프랑스의 칼레는 도버 해협을 사이에 두고 잉글랜드가 대륙으로 진출하는데 가장 가까운 도시이기 때문에 영국에게는 아주 중요한 교두보 역할을 하는 도시이다. 왕비의 말을 듣고 피를 튕기지 않고 이 중요한 곳을 점령한 에드워드 3세는 전쟁을 더 이상 진행할 수가 없었다. 때마침 번지고 있는 흑사병 때문이다.

옛날에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강강술래>를 부르며 원을 그리며 놀았다면 서양 어린이들은 를 부르며 놀았다. Ring around the rosies / A pocket full of posies / Ashes! Ashes! / We all fall down / 그런데 이 노래 가사는 끔찍하다.

첫 소절은 흑사병 때문에 붉은 반점이 생기는 것을, 둘 째 소절은 시체의 썩은 냄새를 막기 위해 주머니 가득 허브를 넣었다는 것을, 셋 째 소절은 화장터에서 나온 재를, 그리고 마지막 소절은 우리도 모두 그렇게 죽는다는 뜻으로 모두 털석 주저 앉는다. 순진한 아이들이 이런 뜻이나 알고 노는 것인지…

14세기 이전에는 이런 전염병이 없었기 때문에 멀리 아시아나 이집트 등지에서 발생, 이탈리아 반도를 거쳐 유럽으로 번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페스트균의 숙주인 쥐들이 배를 통해 육지로 옮기기 때문에 이탈리아에서는 외국에서 오는 선박을 항구에 들이지 않고 40일 동안 바다에 격리시켰다. 40일이 지난 후에도 환자가 발생하지 않으면 그땐 입항을 허용했다. 왜 하필 40일인가? 성서에서 40일은 속죄와 정화를 뜻하기 때문이다. 노아의 홍수, 모세의 산기도, 광야생활, 예수님의 금식 등이 모두 40일이다. 40일은 베니스의 사투리로 quaranta goimi. 이것이 코로나 19 때 쓰인 Quarantine의 어원이다.

그 당시에도 이 병의 경로는 찾았기 때문에 이같은 조치는 취했겠지만 치료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 온갖 미신과 루머가 난무했었다. 환자가 죽어나간 집은 병마가 밖으로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그 집에 대못질을 했다.

의사까지도 자기의 모습의 보고 병마가 놀라서 달아나라고 검은 색 모자에 검은 색 옷과 신발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색으로 뒤집어 쓰고 얼굴은 새부리 가면으로 가린 기괴한 모습으로 다녔다. 목성과 토성이 겹치는 천재 이변의 결과라는 발표도 있었다. 당연히 점성술사의 말로 들리겠지만 그게 아니고 파리대학 의학부의 발표였다니…

일부에서는 이 악재를 유대인 학살의 기회로 삼았다. 이 와중에도 유대인들은 구약의 율법에 쓰인 정결의식에 충실했기 때문에 전염병이 이 민족만 비켜가는 듯 잘 걸리지 않았다. 평소에도 이들은 상술이 뛰어나 남의 나라에 더부살이하면서도 부유하게 살았기 때문에 질시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독일 지방에서는 이 전염병의 원인을 이들이 우물에 독을 탓기 때문이라는 소문을 퍼치고 유대인을 보느대로 생매장시키거나 불태워 죽였다.
1348년 9월에 교황 클레멘스 6세는 칙서를 내리며 유대인 보호에 나섰지만 이 증오를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이 때부터 전염병이 수그러들기 시작하자 에드워드 3세의 아들 흑태자 에드워드는 약 7년간의 휴전을 끝내고 1만의 군사를 이끌고 다시 프랑스를 침공한다. 아버지는 스코틀랜드로 향했고 아들은 프랑스 남부를 휩쓸었다. 그 당시 프랑스는 필립 6세를 이어 그의 아들 장 2세(Jean II)가 즉위했기 때문에 이 둘은 프아티아(Poitiers) 전투에서 맞붙었다. 그런데 시기만 다를 뿐 전쟁의 양상이나 결과는 예전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다.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잉글랜드 장궁병이 쏘아대는 화살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프랑스의 기사들. 패전 이유도 같다. 화려하고 육중한 갑옷의 무게 만큼 승리를 확신하는 자만심도 컷기 때문이다.

게다가 장2세의 별명은 선량왕이다. 그를 묘사한 문구를 보면 한마디로 그는 왕이 되지 말았어야 할 인물이다. 아버지보다 어리석고, 병적으로 의심이 많아 매사를 반란과 연관시켜 불안해 했다. 평소에는 나약하고 우유부단하다가 갑자기 놀라운 정력을 발산하기도 하는 돈키호테형 기분파.

16살 된 둘 째 아들을 데리고 나온 장 2세. 끝내는 항복의 의미로 장갑을 벗어 흑태자에게 건넨다. 흑태자 역시 기사도를 발휘, 그를 포로가 아닌 왕으로 극진히 대접했다. 런던으로 개선할 때는 장2세를 멋진 크림색 말에 태우고 양옆에 조랑말까지 붙여 주면서 사보이 궁에 머물게 했다. 그리곤 그의 몸값으로 금 300만 크라운이라는 엄청난 금액을 메기고 이를 3년 할부로 받을 계획이었다. 이 금액은 당시 잉글랜드의 2년치 세수에 해당한다고.

이 때 프랑스에서는 자크리의 난이라는 농민 폭독이 일어난다. 그래서 아버지와 같이 출정했던 둘 째 아들을 칼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조치하고 장 2세는 프랑스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 사이에 그 아들은 한 시골 처녀에게 반해 칼레를 벗어나 그 처녀와 도망치게 되자 장 2세는 제발로 다시 사보이 궁에 들어와 그곳에서 죽는다. 이 역시 기사도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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