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철 칼럼- 부모(父母) > 컬럼

본문 바로가기
미주지역 바로가기 : Calgary/EdmontonChicagoDallasDenverHouston,    TorontoVancouverHawaiiLANYSeattle

컬럼

기타 최수철 칼럼- 부모(父母)

페이지 정보

본문

사람들 마음속에 내장된 시계는 저마다 심리 상태가 다르다. 함께 있을 때 설레이는 사람보다는 편해지는 사람이 좋고, 손을 잡으면 손이 따뜻해 자기 보다는 마음이 따뜻해져 오는 사람 그가 바로 우리의 어머니이다. 사람의 판단은 항상 상대적인 것으로 절대적인 옮음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어머니라는 소리만큼 가슴에 뭉클 와 닿는 말이 있을까. 사랑을 가장 근접해 느낄 수 있는 것은 있다면 어머니의 사랑일 것이다. 내가 정성을 다 바쳐 무엇이던지 해 드리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어머님이다. 돌아가신 어머님의 모습을 꿈에서라도 보고 싶다. 먼 발치에서나마 한번이라도 쳐다보고 싶다…


00 교도소에서 복역중인 죄수들에게 물었답니다. “세상에서 누가 가장 보고 싶냐?”고 그랬더니 두 개의 대답이 가장 많았답니다. “엄마”와 “어머니” 라는 답이… 왜 누구는 “엄마” 라고 했고, 왜 누구는 “어머니”라고 했을까요? 둘 다 똑 같은 대상인데… 그래서 또 물었답니다. 엄마와 어머니의 차이가 무엇인지?...  그랬더니, 나중에 한 죄수가 이렇게 편지를 보내왔답니다. “엄마는 내가 엄마보다 작았을 때 부르고, 어머니는 내가 어머니보다 컷을 때 부릅니다!” 즉 엄마라고 부를 때는 자신이 철이 덜 들었을 때였고, 철이 들어서는 어머니라 부른다는 겁니다. 그런데, 첫 면회 때 어머니가 오시자 자신도 모르게 어머니를 부여안고 “엄마~하고!” 불렀다고 합니다. 세상 어디에도 엄마와 어머니의 정의를 명확하게 한곳은 없었겠지만, 엄마는 세상에서 소중한 존재 입니다. 


불가의 부모은중(父母恩重)에 따르면, 엄마는 우리를 낳을 때 3말8되의 응혈(凝血)을 흘리시고, 낳아서는 8섬4말의 혈유(혈유) 를 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엄마는 주민등록증 외에 또 하나의 증을 가지고 게십니다. “골다공증” 그런데 아버지는 손님!!  “힘 없는 아버지” 대한 슬픈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유학간 아들이 어머니와는 매일 전화로 소식을 주고 받는데, 아버지와는 늘 무심하게 지냈답니다. 어느 날 아들이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아버지가 열심히 일해서 내가 이렇게 유학까지 왔는데, 아버지께 제대로 감사 해본 적이 없다. 어머니만 부모 같았지, 아버지는 늘 손님처럼 여겼다라고 말입니다. 아들은 크게 후회하면서 오늘은 아버지께 위로와 감사의 말씀을 전해야겠다 는 생각으로 집에 전화를 했습니다. 마침 아버지가 받았는데, 받자마자 “엄마 바꿔 줄께!” 하시더랍니다. 밤 낮 교환수 노릇만 했으니 자연스럽게 나온 대응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아들이 “아니요, 오늘은 아버지하고 이야기를 하려고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왜, 돈 떨어졌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돈 주는 사람”에 불과 했던 겁니다. 아들은 다시 “아버지께 큰 은혜를 받고 살면서도 너무 불효한 것 같아서 오늘은 아버지와 이런 저런 말씀을 나누고 싶어요!” 라고 말 했습니다. 이에 아버지는… “너 술 마셨니?” 하더랍니다. 


자식들에게는 누구나 어머니가 있고 아버지가 있다. 부모를 사랑하는 지극한 마음과 정성은 다 똑같다. 자식으로서 평생 마음에 걸리는 회한을 남기지 않으려면 부모님 살아 생전에 사랑의 마음을 자주 표현하고 비록 작은 것일지라도 정성을 담아 더 늦기 전에 부모님 공경을 위한 사랑을 실천하는 게 자식의 도리다. 동서고금을 통해 특히 어머니를 주제로 쓴 시와 글은 참으로 많다. 가슴 뭉클하고 눈가에 눈물이 핑 도는, 심금을 울리는 글들은 대부분 부모님이 이 세상을 떠나고 난 뒤 쓴 글들이다. 특히 어머니가 살아계셨을 때 우리가 어머니에게서 받았던 무한한 사랑은 자식으로서 평생 갚지 못할 사랑의 부채이며 은혜였기 때문이다. 

자식과 함께 미국에 살고 싶다며 미국에 오셨다. 3개월 체류하시다 한국으로 돌아 가신지 5년 만에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이다 나는 어머님의 임종을 보지 못했다. 어머니가 미국에 오신 이유는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어머니는 외로워 하셨고, 쓸쓸해 하시는데 미국에 사는 큰 아들, 셋째 아들이 있는 미국에 가서 가족이모여 함께 생활하시기를 막내 딸은 마음에서 원했기 때문에 1만불을 만들어가지고 미국에 오셨다. 시차를 극복하시고 난 이후에는 김치도 직접 담그시며, 교회도 다니시며 자식과 함께 미국에서 지내실 것 같았으나, 한국에서 생각했던 미국생활은 어머니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에는 당신의 생각에는 미치지 못한 것 같다. 


한 가정의 생활규범, 인간관계의 한계성, 한국문화의 “효의 사상”을 중시하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내리사랑” 자식들이 부모를 공경하는 “치 사랑”의 존경과 가족 유대관계의 한계성에 마음이 몹시 마음 아프셨던 것 같다. 모든 가정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기주의가 만연된, 부모를 공경할 줄 모르는 버릇 없는 한국가정과의 문화의 차이가 빚은 “당신 나름 대로의 부모로서의 “삶의 회유” 을 자책하시며 3개월 간의 미국생활을 끝으로 막내 아들 아파트에서 하루를 보내시고 미국을 떠나기로 결심하신 것이다. 막내 동생도 지난 3월16일 휴스턴에서 생을 마감했다.  아무라 참으려 해도 가슴이 쓰리고 아픈 것은 억제 할 수 가 없구나!? 보고 싶습니다. 어머님. 그리고 동생 수군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회원Login

회원가입
이번호 신문보기 더보기

회사소개(KOR) | 광고&상담 문의
9219 Katy Fwy #291. Houston TX 77024
TEL. 713-827-0063 | E-MAIL. houstonkyocharo@gmail.com
Copyright © The Korea World News All rights reserved.
Developed by Vanple Networks Inc.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팝업레이어 알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