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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교육 왕권의 수위를 가눔해 준 바이킹 출신 크누트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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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명의 소년왕 중 마지막 왕인 에셀레드(Aethelred the Unready 978-1016제위)는 38년간 통치하면서 잉글랜드 역사에 남긴 것은 부정적인 인상뿐이다. 잉글랜드 왕조의 뿌리가 뽑힐 정도의 대대적인 바이킹 침공의 명분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 명분이란 이렇다. 쳐들어온 바이킹을 회유하기 위해 지불하는 Danegeld의 액수가 점점 커지자 중압감에 시달린 에셀레드는 1002년 Danelaw에 살고있는 데인족을 모조리 죽여버리라는 명령을 내린 것. 그 당시 잉글랜드에 정착한 데인족들은 북구의 미신을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 현지인과의 결혼으로 이미 혈연관계가 형성된 상태였는데 이들을 죽이라니… 

이에 대한 복수를 결심한 덴마크의 둘째 왕자 크누트는 200척의 바이킹 선박에 만명에 육박하는 대군을 나눠 싣고 쳐들어와 잉글랜드를 장악했다. 그리고 1006년에는 크누트1세로서 잉글랜드의 왕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잉글랜드 사람들이 그를 정복자로  여기기 보다는 합법적인 왕으로 대해 주기를 원했다. 

합법적인 왕으로 보이기 위해 그는 잉글랜드의 에드먼드 (Edmund the Ironside)를 내쫓지 않고 공동 통치를 펼친다. 노섬브리아를 중심으로 한 북쪽은 크누트가, 웨섹스를 중심으로 한 남쪽은 에드먼드가 다스리기로 하는 조약을 맺는다. 

그런데 이 조약문에는 서로가 서로를 후계자로 임명한다는, 고개를 갸웃뚱하게 만드는 구절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먼저 죽으면 남은자가 전체 왕이 된다는 뜻이겠지. 그런데 에드워드는 협정 후 채 두 달도 넘기지 못하고 죽는다. 그래서  크누트가 전체 왕이 되어 잉글랜드에 <데인 왕조>를 열고 이를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해 에셀레드의 미망인 에마 왕비와 결혼까지 한다.   

Netflix 에서 볼 수 있는 <Vikings Valhalla>는 이 당시의 잉글랜드를 잘 묘사하고 있다. 아, 물론 기독교와 바이킹 전통 신앙과의 갈등을 더 비중있게 다뤘지만. 

그런 후 크누트는 자기에게 불복하는 사람들을 철저하게 제거한다. 에셀레드의 장자와 귀족들을 축출하고,  그들의 영토를 몰수하여 데인계 측근에게 나눠준다. <적의 머리를 베어오는 자가 친형제보다 더 소중하다>라고 하는, 손대지 않고 코풀기 작전도 잊지 않았다. 이렇게 정적을 제거할 때는 과연 바이킹의 지도자답게 날 것 그대로의 야성을 드러내 무자비하게 척결했지만 그 후에는 계몽 군주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다.    

우선 그는 영국의 기독교적 전통을 존중하여 많은 수도원을 짓고 아낌없이 지원하면서 대주교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크누트의 이같은 행동을 영국의 학자들은 이렇게 분석한다. 그가 야만인에서 가장 기독교인다운 왕으로의 변신을 시도한 것은 자신이 기독교 문명 국가를 다스리는 왕으로 인정받기를 열망했기 때문이었다고. 아,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 후의 행적을 보면 꼭 그리 인정받고 싶어서만은 아니지 싶다. 

이뿐만이 아니라 그는 수많은 앵글로 색슨 출신 인재들을 등용했다. 비단 지도자급만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앵글로 색슨 데인족 구별하지 않고 평등하게 대했으며 두 민족간의 혼인을 적극 장려하는 융화정책을 폈다.  

다음으로 그는 자신이 끌고 온 군대를 해산시켜 버린다. 혹여 생길지도 모르는 집단 반란을 사전에 차단할 요량으로. 그런 후 약 2천명에 달하는 Housecarl이라는 친위대를 창설, 자신의 중앙집권적 왕권을 굳건히 다진다. 

잉글랜드에서 집권한 지 2년 후에는 덴마크왕인 형, 하랄 2세가 사망하자 크누트 2세로서 덴마크 왕도 겸직했다. 그리고10년 후인 1028년에는 덴마크를 침공한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연합군을 물리친 후 스코틀랜드의 일부까지 차지하면서 북해를 호수로 삼는 엄청난 영토를 차지, 이른바 북해 제국을 건설한다. 

그리고 그는 그가 건조해 둔 Ledig, Fryd 전투선을 끌고 잉글랜드와 스칸디나비아 권역에서 활동하는 해적들을 토벌했다. 우리가 지도에서 보는바와 같이 스칸디나비아 지역을 출발해서 잉글랜드로 침략해 오던 바이킹의 약탈 경로를 무역 경로로 바꾼 것. 잉글랜드는 그 지긋지긋한 바이킹의 피습 대신 이제는 자신들이 무역선을 타고 덴마크로 간다. 바이킹 전사들이 모여 약탈 행위를 의논하던 덴마크가 이제는 크누트에 의해 잉글랜드와 발트해역의 상인들이 모이는 교역의 중심지로 변했기 때문이다.  

침략자로 들어와서 잉글랜드에 평화와 안정을 안겨준 정복자, 잉글랜드의 법을 준수하고, 교회를 다시 세우고, 무엇보다도 북해상의 해적로를 무역로로 바꿔 태평성대를 안겨 준 크누트의 인기는 대단했다. 자연히 크누트 주변에는 왕을 신격화하여 듣기에도 민망한 오글거리는 말로 칭송하는 간신들이 들끓었다.  

이것이 지겨운 크누트. 하루는 해변가에 앉아 간신들에에 묻는다. - 너희들은 짐이 이 파도에게 명령하여 ‘게 섯거라’ 하면 멈춘다고 생각하느냐? 순간 당황했겠지만  간신들은 이리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 무, 물론입지요, 전하. 잠시 후 밀려오는 파도에 흠뻑 젖은 용포를 가리키며 <이 세상에서 전지전능한 존재는 오직 하나님뿐, 나는 그런 힘이 없는 한낮 인간>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며 입틀막.  

그 후로 대대로 내려오는 영국의 왕정은 프랑스왕들처럼 절대권력을 소유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독일왕들처럼 허수아비도 아닌 그야말로 신사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그러니까 독재만큼 과하지도, 허수아비처럼 모자라지도 않는, 균형과 견제(check & balance)가 조화롭게 조절되는 영국 왕권의 수위조절은 바이킹 출신의 성군 크누트가 해 준 셈.

가만있자, 그러고보니 섹스피어의 희대의 걸작 햄릿의 정식 제목은 <The Tragedy of Hamlet, Prince of Denmark>이지. 그리고 햄릿의 시대적 배경도 크누트가 북해를 안마당으로 끌어안고 앵글로-스칸디나비아 제국을 건설했던 그 시절. 햄릿의 무대인 엘리노성은 덴마크 북해 해변에 위치한 크론보르성이고. 뭔가 합리적인 의심을 해 봄직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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