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낳고 할리우드가 키워 세계를 웃긴 찰리 채플린 > 컬럼

본문 바로가기
미주지역 바로가기 : Calgary/EdmontonChicagoDallasDenverHouston,    TorontoVancouverHawaiiLANYSeattle

컬럼

문화·교육 영국이 낳고 할리우드가 키워 세계를 웃긴 찰리 채플린

페이지 정보

본문

<영국 60>


중절모를 쓰고 딱 인중만 가린 콧수염을 붙인 듯 기르고, 꽉 끼는 웃도리에 헐렁 바지, 커다란 신을 신고 걷는 팔자걸음에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하는 지팡이는 언제나 그의 한 손에 걸려있다. 보잘 것 없는 남루한 차림이지만 그래도 나름 정장이다. 이것이 찰리 채플린(Charlie Chaplin 1889-1977) 특유의 캐릭터인 The Little Tramp이다.

 

이 떠돌이 신사 캐릭터는 20세기 초 무성 영화 시대를 상징한다고 해도, 아니, 그 보다는 그 캐릭터의 몸놀림 속에서 그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이다. 작달막한 키에 우스꽝스런 옷차림도 그렇지만, 반전의 웃음을 뿜게하는 어처구니 없는 그 특유의 몸개그 속에는 산업화의 부작용이나 전체주의의 폐단 등을 날카롭게 조롱하는 풍자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찰리 채플린은 영국이 낳고 할리우드가 키워 세계가 사랑한 천재, 맞다.


채플린 자신이 출연은 물론 각본을 쓰고 제작과 감독까지 맡은 <The Kid>는 자신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잘 반영하고 있다.  변변한 직업도 없이 떠돌아 다니던 찰리는 길가에 버려진 한 아기를 발견한다. 찰리 자신은 개구멍받이는 아니다. 무명 가수였던 어머니가 정신병원을 들락거리는 바람에 찰리는 아동 보호소에서 자란다. 버려진 아기를 발견한 채플린은 그 아기를 자신의 허름한 2층 단칸방에 데려와 키운다. 


똘똘한 꼬마로 자란 아이는 찰리의 돈벌이 작업을 돕는다. 꼬마가 돌을 던저 일부러 유리창을 깨면 채플린이 유리를 등에 지고 나타나 갈아 끼우고 돈을 챙기는 작업. 이 와중에 유명 배우로 성공한 어머니를 만나지만 어머니도 아이도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다. 찰리의 실제 삶에서는 이런 어머니는 없고 자신이 직접 연극 배우가 되어 성공한다. 

하루는 아이가 아파서 의사를 불렀다. 진찰하던 의사는 이 아이의 과거를 알게 되고 의사를 통해 자신이 버린 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친어머니는 아이를 되찾으려 한다. 한편 아이 키울 능력도 없지만 친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이 들통나 아동 보호소에 가게 된 아이. 거기서는 겨우 탈출하지만 결국은 어머니의 품에 안기게 된다는 간단한 스토리다.  <The Kid>는 그 당시 산업화의 부작용으로 생긴 극심한 빈부 격차를 웃음과 훈훈한 감동으로 승화시켜 그 당시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은, 채플린의 첫 장편 영화다.


1914년은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해이지만 할리우드에 입성한 채플린의 데뷰 첫 해이기도 하다. 그 해 무려 34편의 영화에 출연하였으니 그 암울한 시기에 그 특유의 몸개그가 얼마나 큰 웃음을 주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할리우드 입성 3년만에 그의 몸값은 밀리언 달러 (현 시세로 2,350만 달러)로 치솟아 일약 톱스타의 반열에 올랐을 정도.  


그러나 10년 후 첫 유성 영화 <재즈 싱어>의 출현이 그의 멈출 줄 모르던 발목을 잡았다. 갑자기 화면에서 소리까지 나오니 관객들은 거기에 환호하며 몰릴 수 밖에.  하지만 채플린은 그의 무성 영화에 대한 집념을 꺾지 않고 <City Lights>를 찍는다. 마침 전 세계를 배고픔에 허덕이게 했던 대공황과 맞물려 8천여개의 영화관이 문을 닫는 불황이 덮친 때.   그 와중에 찍은 눈먼 소녀와 떠돌이의 사랑은 제목 그대로 하층 빈민들에게 웃음과 잔잔한  감동 속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 낸다.


 1931년 채플린은 간디를 만나 기계 문명이 주는 폐해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그 결과로 기계가 인간의 신성한 노동력을 앗가간 인간 소외, 그 소음  속에 말살되는 인간성 등등을 다룬 작품 <Modern Times>가 나온다. 이 작품은 할리우드가 만든 마지막 무성영화가 되었고 채플린은 자신의 떠돌이 개릭터도 이 작품 속에 묻어 버린다.  그 후에 나온 작품은 자신이 히틀러를 풍자한 한켈과 유대인 이발사 찰리로 분장, 1인 2역을 소화해 낸 <위대한 독재자>이기 때문이다.    


2차 대전까지 끝나고 냉전시대가 시작될 무렵 그는 피할 수 없는 위기를 맞는다. <살인광 시대>라는 작품에 등장하는 ”한 둘을 죽이면 악당이지만 대량학살을 하면 영웅이 된다”는 대사가 극우파 반공주의자들의 심기를 건드린 것. 이 대사를 2차 대전에 참전한 연합군 장병들을 빗대어 모독했다고 해석한 것. 곳곳에서 상영금지 처분을 당하고 결과적으로 흥행에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 FBI가 터뜨린 그의 이해할 수 없는 여성 편력을 꼬투리로 미국 비자가 말소되어 그 후로는 스위스에 칩거하게 된다.    


1972년 제 44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미국에서 열렸다. 평생 공로상 수상자로 찰리 채플린이 호명되자 모두가 환호하며 기립박수를 보낸다. 그 박수는 12분 동안 끊일 줄을 몰랐다. 아카데미 측에서는 어느덧 백발이 성성한 노인되어 20년만에 돌아온 그에게 중절모와 지팡이를 선물했다. 이것을 받아든 채플린은 감격의 눈물이 글썽하여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더니 그 특유의 slapstick  코미디로 관객을 즐겁게 했다. 


1975년, 86세의 노인이 된 그는 세계 영화 산업에 끼친 지대한 업적을 인정받아 영국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수여받는다. 런던 빈민가에서 알콜 중독자인 아버지와 정신병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세계가 급변하는 격동의 시기에 눈물을 웃음으로 승화시켜 고달품을 덜어 주던 찰린 채플린. 그는 기사 작위를 받은 지 2년 후 자택에서 조용히 눈을 감는다.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희극이다 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 up, but a comedy in long shot.> 블래 코미디 같은 삶을 살고 간 그의 명언이다. 


b6a29877ad12a1cc42758c69f15d9026_1700846391_1058.jpg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회원Login

회원가입
이번호 신문보기 더보기

회사소개(KOR) | 광고&상담 문의
9219 Katy Fwy #291. Houston TX 77024
TEL. 713-827-0063 | E-MAIL. houstonkyocharo@gmail.com
Copyright © The Korea World News All rights reserved.
Developed by Vanple Networks Inc.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팝업레이어 알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