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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

그날 문구점에 들른 것은 우연한 일이었습니다. 어버이날을 앞두고 식사 대접과 선물을 구입하기 위해 두 분 어머니를 모시고 쇼핑몰을 찾았는데, 구석진 곳에 자리 잡은 문구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왜 그럴까요, 문구점을 보면 반가운 마음이 앞섭니다.

참새 방앗간 그냥 못 지나가듯이 선물 구입을 아내에게 맡기고 문구점으로 들어갔는데, 눈에 띄는 노트가 있었습니다. ‘나무를 자르지 않고 만든 사탕수수 노트’라는 글이 적힌 노트였습니다. 사탕수수로도 종이를 만드는구나, 무엇보다 신기하게 여겨졌습니다. 재료가 사탕‘수수’이기 때문인지 빛깔이며 생김새며 크기며 참 ‘수수’하게 생긴 노트였는데, 노트에는 작은 글씨로 몇 가지 설명이 덧붙여 있었습니다.
‘나무를 자르지 않은 비목재 노트’ ‘100% 사탕수수’ ‘스프링, 본드 대신 실 제본’ ‘환경을 생각한 콩기름 인쇄’ 하나하나의 설명이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노트 한 권을 만들 때에도 이처럼 환경을 생각하는 이가 있다는 것이 반가움을 넘어 고마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사탕수수 노트에 글을 쓰면 뭔가 꾸밈이 없는, 마음이 담긴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착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전시되어 있는 노트가 다섯 권, 가격도 저렴했습니다. 모두 사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나처럼 반가운 마음을 누릴 누군가를 위해 두 권을 남겼는데, 그런 결정을 하는 나를 보며 괜히 웃음이 났습니다.
문득 책을 처음으로 출간할 때가 떠올랐습니다. 한 출판사로부터 책 출간을 제안받았을 때,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틈틈이 써 온 변변치 않은 글을 책으로 내겠다니 무엇보다 고마운 일이었고 마음 설레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생선가시 목에 걸리듯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책을 낸다는 것은 종이를 사용하는 것, 종이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나무를 베어야 하는 일, 바로 그 대목에서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과연 내가 쓴 글이, 내 글을 담은 책이 나무를 베어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지구라는 작은 별에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는 것은 더없이 소중한 일, 그런데 그것을 베어내고 책을 낸다면 최소한 나무를 베어낼 만한 가치가 있어야 할 것, 아무리 생각을 해도 자신이 없었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책을 냈고, 그 뒤로도 스무 여권의 책을 더 냈습니다. 처음 책을 낼 때의 마음은 점점 희석이 되어 이제는 그만한 고민을 하지 않습니다. 내 생각이 세상 사람들과 나눌 만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여전하면서도, 나무를 베어내는 것에 대한 고민은 나도 모르게 가벼워지고 만 것입니다.

그런 나에게 사탕수수 노트는 화들짝 나를 놀라게 하는 일로 다가왔습니다. 점점 잃어버리고 있는 그 마음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아직도 사탕수수 노트에 글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탕수수에 걸맞은 착하고 순한 글을 써야지, 다짐을 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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