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의 품격에 뿅간 준비된 내조의 여왕 프란체스카 > 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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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교육 신사의 품격에 뿅간 준비된 내조의 여왕 프란체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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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남 14>


산이 높으면 골이 깊게 마련이다. 알프스가 품고 있는 크고 작은 호수들이 그런 말을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호수 레만호는 스위스와 프랑스를 나누는 국경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름도 켈트어로 <큰 물>을 뜻하는 렘 안(Lem an)이 프랑스어로 레만 호수(Lac Léman)가 되었단다. 따라서 스위스에서는 제네바호수라고도 불린다는데 그 보다는 왠지 묘한 낭만적 감성을 살짝 건드리는 레만호라는 이름이 더 좋다. 


한국 방송 작가의 대부인 한운사 작가가 쓴 <레만호에 지다>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그 드라마가 방영될 때는 이미 미국에 있었기 때문에 보진 못했지만 내용은 대충 들었다. 남남북녀의 이루지 못한 사랑 이야기. 옛부터 지금까지 제네바에는 각종 굵직한 국제 기구 본부가 몰려 있기 때문에 남남북녀의 만남이 가능한 장소로 레만호가 적격이었을 것이다. 우남과 프란체스카의 만남도 이 호숫가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둘의 로맨스에 구태여 제목을 붙이자면 <레만호에 피다>. 


우남은 1933년 2월 21일 바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숙소로 돌어왔다. 숙소는 레만호를 끼고 있는 Hotel De Russie. 이곳은 국제연맹본부에서 열리는 회의 때문에 언제나 붐볐다. 저녁 식사를 하려고 식당에 들어섰다. 붐비기는 식당도 마찬가지. 빈 테이블을 찾지 못해 나갈까 하는데 지배인이 말린다. 잠시 후 그 지배인이 안내한 곳은 빈 테이블이 아니라 이미 두 여성이 식사하고 있는 4인용 식탁. 


이 여성들은 오스트리아 빈을 떠나 파리를 거쳐 스위스에 여행 중 바로 어제 이 호텔이 투숙한 프란체스카 도너(Francesca Donner) 모녀였다. 지배인을 따라 온 신사는 프랑스어로 <자리를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정중히 인사한 뒤 앞자리에 앉았다. 프란체스카는 이 분에게서 동양 신사의 고귀한 품격을 느꼈다. 그러나 그가 주문한 음식은 품격과는 거리가 멀었다. 소시지 한토막에 절인 양배추, 감자 두 알이 전부. 그 초라함에 속으로 놀랐지만 그냥 묵묵히 먹을 수 밖에.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온화한 표정으로 <본 아뻬띠>라 말하고  식사하는 그와 눈이 마주친 프란체스카. 이 숙녀는 먼저 말을 거는 것으로 이 당황스런 분위기를 무마하려 했다. - 어디서 오셨어요? - 코리아에서 왔어요. 순간 숙녀는 언젠가 독서클럽에서 읽고 쟁여 둔 지식을 되살렸다. - 오, 코리아, 그곳에는 아름다운 금강산이 있고 거기에 양반이 산다는 그 나라요? 그러자 이번에는 신사가 자르던 소시지를 놓칠만큼 화들짝 놀란다. - 아니, 코리아를 아세요? 이렇게 시작된 즐거운 대화는 아까 그 지배인의 방해로 아쉽게 끝난다. - 저, 베른에서 온 기자가 당신을 찾는데요. 


긴 여운을 남긴 채 아쉽게 떠난 동양 신사를 다시 만난 것은 다음날 아침에 배달된 라 뜨리뷴 도리앙(LA TRIBUNE D’ORIENT)신문에서 였다. 그의 사진과 함께 인터뷰한 내용을 전면 기사로 실린 것을 프란체스카는 한 자도 빼지 않고 전부 읽었다. 그리고 그 동양신사가 왜 이곳에 왔는지, 그의 사상, 그의 경력, 그의 주장을 알아가면서 자신의 주특기를 살려 그를 돕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우선 그 기사를 오려 봉투에 넣은 후 호텔 front desk에 부탁했다. 이승만에게 전해 달라고. 

   

Franceska Donner Rhee (1900-1992). 그는 비엔나에서  소다수 사업을 하는 부유한 가정의 막내 딸로 태어났다.  자신은  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생각은 달랐다.  자신의 사업을 물려 줄 아들이 없기에 총명한 막내를 후계자로 지목, 의학 대신 상업을 전공하게 했다. 그리고 영어를 배우라고 스콧틀랜드로 유학까지 보낸다. 그녀가 어머니와 파리를 들러 스위스로 와서 그 호텔에 여장을 풀고 그 호텔 식당에서 식사를 했을 때에 이미 그녀는 독어, 영어, 불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었고 그의 주특기는 속기, 타자, 통역.  맘만 먹으면 외로운 독립투사에게 큰 보탬이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그 다음날도 그의 기사가 난 신문은 죄다 오려 그에게 보냈다. 


<나에 관한 신문 기사를 보내 주신 친절에 감사드립니다. 이승만> 이라는 쪽지와 함께 차 한잔 같이 하자는 초청에 응하자 이 둘의 호기심은 서로에 대한 배려의 과정을 거쳐 사랑으로 익어갔다. 이 과정을 눈치 챈 어머니는 불안했다. 그의 품격은 높이 살만하지만 계란에 식초 한 방울 뿌려 삼키는 것으로 한끼를 떼우는 궁상, 학벌에 비해 안정된 직업, 아니 돌아 갈 나라조차도 없는 떠돌이 독립 운동가에게 막내 딸을 주고 싶은 부모는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나이 그 차이. 19세기에 태어난 이승만과 20세기에 태어난 막내 딸과는 무려 25년이나 차이가 났다.  안되겠다 싶은 어머니는 여행 일정을 단축해 서둘러 빈으로 가자고 재촉한다.  거역 할 수 없는 딸은 어머니를 따라 나서지만 레만호숫가에서 피운 사랑의 증표로 호텔 데스크에 어머니 몰래 시큼한 사우어 크래프트 한 병을 두고 나오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백 사람이 있다면 그 중에 한 명은 나입니다. 이 세상에서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열 사람 있다면 그 중에 한 명은 나입니다. 이 세상에서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한 사람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나입니다. 이 세상에서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면 그것은 내가 세상에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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