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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교육 수려한 외모, 언변으로 장애를 이긴 바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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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54>


같은 나무를 보지만 나뭇꾼이나 목수의 생각과 시인의 생각은 다르다. 예수님이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지자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장면을 설명하는데에도 시인의 표현은 절묘하다. <물이 자기를 만든 조물주를 뵙고 얼굴을 붉힌 것 Water saw its Creator and blushed>. 바이런(George Gorden Byron 1788-1824)같은 시인만이 생각해 낼 수 있는 기막힌 발상. 


바이런은 선천적으로 안짱다리에 왼발보다 오른발이 짧은 절름발이다. 그러나 그의 조각 같은 외모는 그의 장애를 커버하고도 남아 사교계의 킹카로 군림하는데 아무런 방해물이 되지 않았다.  아, 그런데 틴에이저 때에는 자격지심에 고백도 못한 짝사랑에 그친 적은 있었지.  그때부터 그는 이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복싱, 승마, 수영, 펜싱 등 온갖 스포츠로 몸을 키웠다. 


그 역시 처음부터 시인으로 각광을 받은 것은 아니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문학과 역사를 공부한 그가 졸업 후 쓴 처녀작 <Hours of Idleness>는 문예비평가의 혹평에  덤으로 붓을 꺾으라는 충고까지 얻는다. 그래서 이듬해인 친구들과 유럽 여행을 떠난다. 포르투갈의 리스본에 도착하여 이야기꺼리가 서려 있는 여러 곳을 둘러보고 말을 타고 스페인을 가로질러 지브롤터 해협의 카디즈에 도착한다. 그곳에 화려하게 펼쳐진 이슬람 문화와 투우를 즐기다 영국 군함을 얻어타고 귀국한다. 


남부 유럽의 이국적인 정취에 흠뻑 빠진 바이런은 다시 유럽 여행을 계획한다. 이번에는 이탈리아. Sardegna섬에 들렀다 Palermo, 당시 영국령이던 Malta 섬을 거쳐 그리스에서 약 3개월을 둘러 보았다. 이 때 그리스 문화에 반해 훗날 그리스 독립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그는 다시 영국 군함을 얻어타고 터키, 콘스탄티노플, 아테네를 돌다가 귀국했다.  


10살 때 큰아버지로부터 남작 작위를 물려받은 바이런은 귀국 후 상원의원이 된다. 그 당시 기계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노동자들이 기계를 때려부수는 러다이트 운동이 일어나자 바이런은 이런 연설을 한다. 


<우리는 이들을 난동분자나 위험하고 무식한 폭도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농사와 집안 일을 거들고 군인이 되어 나라를 지키는 것도 바로 이들입니다. 우리는 이들이 단결하여 자신의 생계수단 뿐아니라 우리의 안락함까지 파괴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들도 일용할 양식을 얻는데 기계가 정말로 장애물이 되기 전까지는 결코 기계를 때려부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안락함에 피해를 주는 것은 기계나 기계를 때려 부수는 그들이 아닌, 바로 정부의 참담한 정책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 연설을 하고 이틀 후에 두 번에 걸친 유럽 여행을 토대로 엮은 장편 서사시 <Childe Harold’s Pilgrimage> 1, 2편을 발표한다. 이 시집을 출간한지 채 일년이 되기도 전에 5쇄를 찍어내야 하는 선풍적인 인기를 얻어 비로소 그는 문단의 스타가 되면서 사교계의 킹카로 군림한다. 이 때를 바이런은 <자고 나니 유명해 졌다 I awoke one morning and found myself famous>라고 표현해 오늘날까지 애용되는 문구로 남는다. 


<와인과 여인, 환락과 웃음을 즐기자. 설교나 탄산수는 나중에>라며 인생을 탕진하는 듯한 시인 특유의 말빨 역시 잘 생긴 외모에 보탬이 되어 그와 놀아난 여자들은 2백명을 육박한다나 더 넘는다나.  하여간 <길없는 숲에 기쁨, 외로운 바닷가에서 황홀함, 깊은 바다 곁, 그 함성의 음악에 사귐이 있다며 난 사람을 덜 사랑하기보다는 자연을 더 사랑한다…>고 했기 때문에 그의 다양한 여성 편력은 사랑이라기 보다는 타고난 바람기가 맞다.  그래서 이를 잠재우기 위해 결혼을 선택한다.  


하지만 이 결혼은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인생에서 수많은 적을 만났지만, 아내여, 그대같은 적수는 생전 처음이다>라면서 이혼한다. 이  둘 사이에서 딸이 태어났는데 그가  바로 최초의 프로그래머라는 명예를 얻은 에이다 러브레이스 백작부인이다. 이혼 후 딸을 혼자 키운 어머니는 바이런 집안에 흐르는 방탕한 피가 딸의 인생을 망칠까 두려웠다. 그래서 감성을 자극하는 문학은 철저히 배제하고 이과 분야에만 몰두하게 한 결과였다. 그러나 그 더운 피가 어딜가랴. 아버지에 뒤질세라 수많은 남자들과 스캔들을 일으켰고 종래에는 도박으로 재산과 명예를 잃고 36세 젊은 나이로 숨진다.


바이런은 6살 연상인 이복누나와도 염문을 퍼뜨리는 바람에 영국에서 추방된다. 그 때 그는 <나에 대한 혹평이 옳다면 내가 영국에 맞지 않는 사람이고 그 혹평이 옳지 않다면 영국이 나에게 맞지 않는 나라>라며 조국을 미련없이 떠나 유럽 각지를 순회한다. 이 여행을 토대로 <차일드 헤럴드의 순례> 3, 4편이 완성된다. 


라인의 평원이 주는 교훈과 장엄한 알프스의 위엄에, 그리고 레만 호수의 그윽함에 그간 더러워진 영혼을 말끔히 씻어버린 바이런은 <폭풍이 부는 벌판에도 꽃은 피고/ 지진 난 땅에서도 샘은 솟고/ 초토 속에서도 풀은 돋아난다/ 밤길이 멀어도 아침 해 동산을 빛내고/ 오늘이 고달파도/ 보람찬 내일이 있다/오, 젊은 날의 꿈이여/ 낭만이여 영원히>라면서 자연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는다. 


그런 후 우리도 세파에 시달려 혼탁해진 마음을 정갈하게 씻어 주는 주옥같은 시들을 쏟아낸다. <맑고 고요한 레만 호수!/ 내가 살아온 어지러운 세상과 대조되는 그대/ 그대의 고요함이 나에게 거친 세상의 물결을 버리고 깨끗한 이 곳으로 오라 하네/…>


바이런은 여행 중에 반해 버린 그리스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 병사한다. 그리스 병사들은 그의 나이만큼 36발의 예포를 터뜨리며 그의 죽음을 슬퍼한다. 1824년 어느 봄날에 그렇게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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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자  

전 경향신문 기자 

전 휴스턴 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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