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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교육 성군의 자질을 갖춘 소년왕 에드워드 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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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29>

교황의 응징을 무시한 채 20여년을 같이 산 캐서린과 이혼하기 위해 성공회를 만들어 앤과 결혼했지만 <1000일의 앤>이란 제목이 말해주듯 결혼한 지 3년 후에 처형된다. 죄목은 여러 귀족과 저지른 간통죄. 그리고 캐서린과 앤의 시녀였던 제인 시모어와 결혼한다.

제인 시모어는 정치나 종교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전형적인 여성형인데 헨리 8세가 그렇게나 원했던 아들까지 낳아 주었다. 이혼과 처형을 반복하며 6명의 여자를 왕비로 삼았기 때문에 헨리 8세는 천하의 바람둥이로 낙인이 찍혔다. 하지만 그에게 절실한 것은 왕권을 든든히 지킬 왕자의 탄생이었다. 장미전쟁을 끝내고 새롭게 시작한 튜더 왕조를 지키기 위해 숱한 반란을 진압하려고 애쓴 아버지를 보고 자란 헨리 8세. 그래서 그의 여성 편력은 개인 취향의 바람기 보다는 언제 또 터질지 모르는 내란으로부터 거뜬히 나라를 지킬 왕자를 낳기 위한 수단으로도 볼 수 있다.

이런 간절한 시기에 제인 시모어가 덜컥 왕자 에드워드 6세를 낳아 준 것. 앞의 두 왕비가 풀어 주지 못한 그 소원을 셋 째가 풀어 주었으니 얼마나 사랑스러웠을까. 하지만 제인 시모어는 그 사랑을 받기도 전에 산욕으로 죽고 만다. 헨린 8세는 제인 시모어만이 자기의 참된 아내라고 생각하였고 그가 죽은 후 실제로 제인 시모어 옆에 눕는다.

지금은 국가 간의 호불호가 이념으로 갈리지만 그 당시에는 종교가 국제 정세를 지배했다. 교황의 명령을 거역하고 가톨릭에서 떨어져 나가 독자적으로 종파를 만든 잉글랜드에게 가톨릭 국가인 프랑스나 신성로마제국, 또는 에스파냐에서 신부감을 데려올 수 없었다.
아니, 데려올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주지를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잘 나가는 왕이라지만 이미 여러 아내를 버리거나 죽인 그에게 누가 딸을 주려 했을까.

이렇게 난감한 시기에 또다시 발벗고 나선 신하가 있었다. 토마스 크롬웰. 캐서린과의 이혼을 위해 성공회를 만들라고 부추겼던 장본인이다. 크롬웰은 신교국가인 클레브르 공국의 앤 공주를 추천했고 궁정 화가 홀바인이 초상화를 그려 잉글랜드로 보냈다. 그 초상화 속에 그려진 여인은 아내감으로 미모를 우선시 하는 헨리 8세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호수같이 고요한 분위기에 왕비로서 손색이 없는 정숙한 기품 속에 숨겨진 아름다움.

그 초상화를 받아 본 헨리 8세. 그 동안 왕비없는 공허함을 떨쳐버리기에 충분한 미모임을 확인하고 잔뜩 기대하며 당장 데려왔다. 그런데 막상 가마에서 내린 신부감은 초상화와 딴판이었다. 요샛말로 표현하자면 궁정화가가 지나치게 포샵 처리를 한 것. 게다가 영어나 프랑스어는 한마디도 못하고 구사할 수 있는 언어는 투박한 독일어뿐. 그 독일어로도 문학을 논한다거나 노래를 부르는 것 같은 재능은 없고 오직 할 줄 아는 것은 바느질 뿐. 화가 난 헨리 8세는 이 일을 주선한 토마스 크롬웰을 처형하고 앤을 ‘클레브스의 암말’이라고 조롱하며 소박해 버린다.

이 사태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출세에 이용한 인물이 있다. 크롬웰의 정적이자 앤 볼린의 외삼촌인 노섬벌랜드의 공작. 그는 크롬웰의 처형을 부추긴 후 자신의 아들을 헨리 8세의 여동생의 직계인 제인 그레이와 결혼시킨다. 그리고 헨리 8세가 죽기 직전, 자신의 며느리 제인 그레이를 후계자로 삼도록 종용한다. 그래서 제인 그레이는 단 9일 동안 왕좌에 앉아 본, 영국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을 통치한 여왕이 된다.

이제 50줄에 들어선 헨리 8세가 다섯 번 째 신부감으로 들인 Catherine Howard는 10대의 철부지였다. 앤 볼린과는 외사촌지간이었지만 아버지가 항상 빚에 쫓기며 살던 몰락한 가문에서 자랐기 때문에 왕비 수업을 커녕 변변한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늙은 헨리 8세는 그녀를 ‘가시없는 장미’로 부르며 그저 아들 하나 얻기를 소망하며 왕비로 삼았다. 늙은 남편에게 만족할 수 없었던 캐서린은 결혼 전에 같이 놀던 남친들을 궁중 음악가, 또는 개인 비서관 등의 자격으로 궁중으로 끌어 들였다.

결과는 뻔했다. 이들과 놀아난 사실이 헨리 8세의 귀에 들어가고 그녀는 런던 탑에 갇혔다. 겁에 질린 왕비는 모든 것을 실토하고. 이 때 그녀가 결혼 전에 남친 중의 하나와 약혼했었다는 사실을 실토했더라면 왕비 자리는 무효 처리되겠지만 목숨만은 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끝내 그 말은 하지 않고 참수되었다. “왕비로 죽지만 차라리 컬페퍼의 부인으로 죽고 싶었다” 그가 교수대로 향하면서 던진 말이다.

마지막 왕비가 된 Katherine Parr의 후덕한 성품 때문에 튜더 왕가는 몇 대를 더 든든하게 지탱할 수 있었다. 그녀는 왕비가 되기 전에 과부였고 그 후엔 제인 시무어의 오빠인 토마스 시무어와 연인 관계로 있었지만 헨리 8세의 청혼으로 왕비가 된다. 늙고 병든 헨리 8세를 끔찍이 돌보았을뿐 아니라 어머니를 잃고 뿔뿔이 흩어져 살던 전처의 자식들, 메리, 엘리자베스, 에드워드를 모두 궁중으로 불러들여 당대 최고의 학자들 밑에서 제대로된 교육을 철저히 시킨 현모양처.

그러나 그녀에게도 아픔은 있었다. 헨리8세가 죽고 난 후 옛 연인이었던 토마스 시무어와 재혼한다. 그러면서 유독 자기를 엄마 처럼 따르던 엘리자베스를 불러들여 같이 살았다.
그런데 이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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