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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베드로에게 주신 주님의 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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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필자는 요한복음 21:15-23을 본문으로 <베드로에게 주신 주님의 명령>이란 제목을 가지고 글을 써 나가려고 한다. 이 일은 부활하신 주님이 일곱 제자들을 위해 준비해 주신 조반을 먹은 후에 일어난 일이었다. 부활하신 주님이 시몬 베드로 개인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던 것이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여기에 대해서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그러자 우리 주님이 베드로에게 이렇게 명령하셨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또 두번째로 주님이 베드로에게 다시 질문하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질문하시자 베드로가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그러자 우리 주님이 베드로에게 “내 양을 치라”고 명령하셨다. 또 세 번째 주님이 다시 베드로에게 이렇게 질문을 하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러자 주님이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그러자 우리 주님이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명령하신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주님이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 가리라.”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라고 사도 요한이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명령하시기를 “나를 따르라”고 명령하신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러자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 곧 사도 요한이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라고 묻던 자였다고 설명해 주고 있다.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서 예수께 여짜와 말하기를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라고 물었던 것이다. 그때에 주님이 이렇게 답변하셨던 것이다.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하신 말씀이었다고 요한이 설명해 주고 있다. 


필자는 오늘 이와 같은 말씀을 배경으로 “베드로에게 주신 주님의 명령”이란 제목을 가지고 본 칼럼을 쓰려고 한다. 첫째로 주님이 갈릴리 해변가에서 일곱 제자들에게 조반을 먹이신 후에 베드로에게 첫 번째로 질문을 하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그러자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그러자 주님이 베드로에게 “내 어린 양을 먹이라”고 명령하셨던 것이다. 여기에서 주님의 질문 주에 “이 사람들”이란 누구를 말하는가? 첫째는, “네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냐”로 보는 학자가 있는 것이다. 둘째로는, “네가 이 사람들, 즉 함께 있던 제자들을 사랑하는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로 보는 학자도 있는 것이다. 셋째로는, “네가 이것들, 즉 배와 기타 고기 잡는 도구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로 보는 학자도 있다는 것이다. 이 모든 해석들이 가능하기도 하며, 타당성을 갖는다고 보여질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문맥에서 가장 타당한 해석은 첫 번째 것이라고 볼 수가 있을 것이다. 비록 예수를 사랑하는 제자들의 열성에 우열을 가린다는 것이 어색해 보이기는 하지마는 베드로가 다른 제자들과 자신을 비교하여 자신의 뛰어난 충성을 공개적으로 표현한 바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에, 그러한 결론은 무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베드로가 비록 그 동안에 실패를 하기는 하였지마는 아직도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여기 요한복음 21장 15절에서부터 17절까지 주님은 베드로에게  “……먹이라,……… 치라, …….먹이라”는 명령을 연속해서 하고 계신 것을 알 수가 있다. 여기에 대해서 어떤 학자들은 첫 번째와 세 번째는 양들을 목초지로 인도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이고, 두 번째는 양들의 모든 활동을 돌보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이렇게 뚜럿하게 구분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고, 양들을 먹이는 것과 돌보는 것이 크게 보아서 같은 범주에 든다고 볼 때에, 오히려 우리는 이것은 같은 의미의 반복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여기 주님의 첫 번째 질문에  나오는  “어린 양”(lambs)이란 표현은 베드로가 돌보아야 할 양들이 매우 나약하고도, 자기를 방어할 능력이 부족함을 시사하는 의미인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부여된 소명은 바로 매우 힘이 드는 일이요, 많은 사랑과 정성과 헌신을 요구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것은 베드로에게만 주시는 명령이 아니라, 먼저 믿고 있는 우리에게도 주시는 주님의 명령임을 분명히 인식해야만 할 것이다. 


둘째로, 두 번째 질문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는냐”였는데, 이렇게 물으실 때에 베드로가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답변하였던 것이다. 그러자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내 양을 치라”고 명령하셨던 것이다. 몇일 전에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과 유월절 만찬을 마치신 후에 베드로는 제자들이 다 보는 앞에서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향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요 13:37)라고 고백한 적이 있었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주님, 나는 내 목숨보다도 주님을 더 사랑합니다”라는 사랑의 고백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주님을 위하여 목숨을 버려야 할 위기를 만나게 되자 베드로의 자신감은 모래성처럼 어이없이 무너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는 예수님의 예언처럼 닭 울기 전에 세번씩이나 어린 계집종 앞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심지어는 예수를 저주까지 하면서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는 그 후에 아마도 자신의 무능함을 통곡하면서 너무 괴로운 나머지 뜬 눈으로 밤을 세웠을 것이다. 새벽 시간에 닭이 우는 소리가 들리기만 하면 그의 아픈 상처가 되살아나서 그를 무척이나 괴롭혔을 것이다.   


풀란드의 소설가인 센키비치(Henryk Sienkiewicz, 1846-1916)의 소설, “쿼바디스”(Quo vadis)의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오고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 처형을 당한 이후로 네로 황제는 더욱  잔인한 방법으로 기독교인들을 학살하였다고 한다. 그때에 기독교인이었던 “기리아”가 수많은 시민들이 보는 가운데 무시 무시한 들소가 들어 있는 원형 극장 안으로 들여 보내졌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노예였던 “우르서스”가 원형 극장 안으로 뛰어 들어가 들소의 머리를 비틀어서 가까스로 “기리아”를 구출해서 원형 극장에서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구사 일생으로 살아남은 “기리아와 우르서스”는 지하 교회에 숨어 있던 베드로를 찾아가서 죽음의 도시인 로마를 탈출할 것을 종용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신도들의 요청에 의해서 베드로가 로마를 급히 빠져 나와서 캄파니아 들판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을 그 때에, 갑자기 환한 한 줄기의 빛이 베드로를 향하여 다가왔다고 한다. 그 빛이 예수님임을 알게 된 베드로가 땅에 엎드린 채로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쿼바디스 도미네) . 그러자 빛이신 주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네가 나의 양떼들을 버리고 도망가고 있으니 내가 다시 로마로 돌아가서 다시 한번 십자가에 못박혀야 하지 않겠느냐?” 이 질문 앞에서 베드로는 당장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방향을 다시 로마로 돌려서 로마로 돌아가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에  로마 정부의 당국자들에게 잡혀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를 당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오늘 “베드로에게 주신 주님의 명령”이라는 제목의 글을 읽게 되었다. 베드로가 많은 실수와 실패가 있었지마는 최후에는 주님이 예언하신 그대로 자기의 팔을 벌려서 다른 사람이 그에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그를 데려가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게 하였던 것이다. 우리도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의 양무리들을 위해서 죽도록 희생하며 헌신하며 충성해야만 할 것이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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