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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교육 대영제국의 초석을 다진 알프레드 대왕의 활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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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3> 


 7왕국이 건설된 브리튼 섬에 뱃머리가 높게 솟은 날씬하고 길쭉한 배 세 척이 나타났다. 그 속에는 칼과 단검으로 장식된 붉은 옷을 입고 뿔달린 투구를 쓴 데인 사람들(Danes)이 타고 있었다. 흰 피부에 어울리는 푸른 눈, 훤칠한 키에 흩날리는 금발머리. 뭣 하나 나무랄 수 없는 훈남형 외모. 하지만 그 외모에 어울리지않게 성격은 포악했고 행동은 잔인했다. 본래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자리잡고 살았지만 5세기 중엽부터 지금의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등지로 흩어져 살다가 일부다처제로 인구가 폭증하자 브리튼 섬까지 넘보게 된 Viking 들이다. 


 이렇게 배 세 척으로 시작한 바이킹의 해적질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대범해 지더니 851년에 이르러서는 대대적인 침략 행위로 발전한다.  350척의 배가 템즈강을 거슬러 오르며 캔터베리 수도원을 파괴하고 아녀자를 강간하고 살육하는 약탈행위에 시달리기를 20 여 년. 마침내 7왕국 가운데에서 가장 큰 힘을 지닌 웨섹스의 알프레드를  중심으로 잉글랜드가 뭉쳤다.


 알프레드(Alfred 849-899)는 웨섹스의 왕족으로 태어났지만 5형제 중 막내였다. 아버지 에설울프왕은 인성 좋고 영특한 막내가 서열로 따져보면 왕이 될 확률이 희박해서 성직자를 만들려고 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로마로 여행갈 때마다 막내 알프레드를 데려갔다. 그는 그곳에 머무는 동안 라틴어도 배우고 로마의 문물을 접하면서 견문을 넓혔다.    


 865년 바이킹이 브리튼 섬을 침공하자 형들과 함께 군대를 조직하여 방어했으나 참패, 노섬브리아와 동 앵글리아 왕국이 그들의 손에 넘어갔다. 870년에는 웨섹스까지 쳐들어왔고 형들이 전사하는 바람에 이듬해 알프레드는 웨섹스의 왕이 된다. 


 그때는 이미 브리튼의 7왕국 중 노섬브리아와 동앵글리아에 이어 머시아까지 잃은 상태.  878년에 웨섹스는 세 번 째 공격을 당했다. 이번에도 웨섹스 군대는 오합지졸이 되어 뿔뿔이 흩어졌다. 알프레드는 농부로 변장하고 늪지대의 한 섬으로 피신, 거기서 한 나무꾼의 움막에 들어가 도움을 청했다. 마침 빵을 굽던 아낙이 우유를 짜오겠다고 나가며 빵이 타지 않게 좀 봐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마고 대답은 했겠지. 하지만 나랏일 걱정에 그 귀한 빵이 타는 줄도 몰랐다. 잠시 후 우유를 들고 나타난 아낙의 질책을 어찌 감당했을지 … 안 봐도 비데오.

    

 평소에 음악을 즐기던 알프레드는 적군을 염탐하기 위해 한가지 계략을 꾸몄다. 이번에는 악사로 변신, 하프를 구해 들고 데인족 막사 근처에 가서 버스킹으로 흥을 돋구었다. 익숙한 노래를 같이 흥얼거리다 기분이 좋아진 데인족 병사들이 흥에 겨워 술판을 벌이고 취해 갈 즈음, 그는 눈치껏 막사의 실태를 파악했다. 어떤 무기를 얼마나 가졌는지, 창고에 식량은 넉넉한지, 군사들의 사기나 정신 상태는 어떠한지 등 꼼꼼히 살폈다. 


 그런 후 흩어진 군인들을 다시 모으고 영주들을 설득하여 민병대도 조직하고 곳곳에 요새도 만들었다. 그리고 그 해가 바뀌기 전에 에딩턴(Edington) 전투를 벌여 바이킹 군대를 격퇴시켰다. 참으로 오랜만에 맞보는 승리.


 그러나 그는 싸움을 이쯤에서 멈추기를 원했다. 적장 거스럼(Guthrum)에게 두 가지 조건을 내걸며 평화 협정을 맺는다. 그 두 가지 조건은 우선 당신부터 기독교로 개종할 것과  데인족은 잉글랜드의 동부 지역에만 집단으로 정착할 것. 이곳을 Danelaw라 했다.   


 이같은 평화협정으로 정치적 안정을 확보한 그는 사회, 교육, 법률 등 내치에 힘썼다. 그 당시에는 아직 시계가 없었기 때문에 양초에 눈금을 만들어 초가 타들어 가는 것을 기준으로 시간을 쪼개 업무를 수행했다. 혹시 바람이 불면 꺼지거나 타는 속도에 변수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하얀 뿔로 덮개를 만들어 씌우면서.   


 그는 군조직을 개편하고 바이킹이 가진 배보다 훨씬 더 큰 배를 건조, 해군 육성에 힘썼다. 이러한 방위 개편책은 필연적으로 도시계획 사업으로 이어졌다. 파괴된 수도원이나 교회가 복구되고. 곳곳에 다리를 놓고 로마시대부터 내려온 성벽을 보수하고 도로를 개설하고… 특히 데인족을 동부로 몰아내고 되찾은 런디니움의 중요성을 잘 아는 알프레드왕은 런던의 중심을 성벽 안으로 옮겨 런던버그 (Lundenburg)라 했다. 여기서 burg는 요새라는 뜻이다. 요소마다 항구를 만들어 다시 무역을 활성화시켜 런던의 옛 모습이 재현되었다. 


 그런 후 그는 여생을 교육 사업에 바쳤다. 그는 유럽에서 많은 학자들을 초빙하여 성직자는 라틴어를 구사할 수 있도록, 일반인은 영어를 읽고 쓸 수 있도록 문맹퇴치에 힘썼다. 그 자신도 라틴어를 영어로 번역해 필사했고 특히 색슨족 시대의 잉글랜드에 관한 정보가 수록된 <Anglo-Saxon Chronicle>이 이때부터 읽혀지기 시작했다. 


 그는 특히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도 정당한 법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법전을 편찬했다. 성경의 원리를 따르기 위해 구약에 나오는 입법의 원리와 켄트의 에셀버트왕의 법전, 웨섹스의 이네왕의 법전, 머시아의 오파 왕의 법전 등을 참조하여 기독교 국가에 적합한 통치 법령을 만든 것. 이 법전은 후대에 가서 토머스 제퍼슨 부터 윈스턴 처칠에 이르는 많은 정치가들의 참고서가 되었다. 


 그는 유럽의 카를로스 대제나 조선의 세종대왕과 같은 업적을 쌓은 성군이기에 영국에서는 유일하게 그에게만 대왕이란 칭호를 붙여 부른다.  Alfred the Great. 그의 행적은 그의 사후 천년 기념 행사 때 세워진 동상 밑에 새겨진 글귀에 요약되어 있다. 

<웨섹스 왕 알프레드는 덴마크의 침입자들을 웨섹스에서 몰아냈다. 그는 곳곳에 요새를 만들었는데 그 중 가장 큰 윈체스터는 그의 수도였다.  그가 통치하는 동안 지금도 사용되고 있는 도로가 만들어졌다. 알프레드는 영국 왕들 중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다. 그는 학문과 수도원 부흥을 장려했고, 영국 왕국의 기초를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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