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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교육 감옥에서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를 구상, 대한의 밀사로 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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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남 5>


한성감옥에 사형수로 복역 중이던 우남은 선교사들의 적극적인 구명운동으로 1904년 8월에 지옥 같은 감옥을 복당(The House of Blessing)이라 부르며 풀려난다. 그와 뜻을 같이 한 동지들이 감옥을 복당이라 부를 수 있었던 것은 그 볼품없는 공간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교육활동을 신나게 펼칠 수 있었고, 집필 활동도 활발하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한제국의 미래 설계도가 그곳에서 그려졌기 때문이리라. 그 설계도의 밑그림은 1903년 8월호 <신학월보>에 실린 <예수교가 대한 장래의 긔초>에서 엿볼 수 있다.                  


<부럽도다 저 개명한 나라에서들은 사람의 몸과 집안과 나라를 통히 하나님의 도로써 구원을 엇엇고, … 첫재는 … 예수교는  본래 교회 속에 경장하는 주의를 포함한 고로 예 수교 가는 곳마다 변혁하는 힘이 생기지 아는대 업고,… 둘재는 … 예수 외에는 더 죠흔 씨도 업고 더 조흔 밧도 업스니 남을 내  몸 갓치  사랑하는 교회에 남의 죄를 대신하야 목숨을 바리는 은혜로써 씨를 뿌려 몬저 내 마암에 뿌리를 박고 연하야 남의게 벗어 밋치 게 할진대…>


백성이 누릴 기본 인권을 핵심으로 하는 그 건국 설계도의 실체는 그가 옥중에서 쓴 첫 책 <독립 정신>에 더 잘 드러나 있다. 참고로 이 책은 1904년 처음 집필할 때는 책 제목이 <독립 요지>였으나 1910년 출판될 때는 <독립정신>으로 바뀐다.  


우남은 이 책 머릿말에서 집필 동기와 목적을 밝히고 있다. <옥중에 지리한 세월이 어언 7년이 된지라… 때마침 러일전쟁이 벌어지고 있어 남아로서 세상에 나서 유익한 일을 할 경륜은 없지만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내용이 부족한 점도 있고 일관성도 적지만 내용의 핵심은 “독립”이란 두 글자….


한글로만 기록한 것은 전국의 많은 사람들이 보기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특별히 백성에 대하 많이 쓴 때문이다. 우리나라 증간층 이상의 사람이나 한문을 안다는 사람들은 대부분 썩어 잘못된 관습에 물들어 기대할 것이 없고 그들의 주변 사람들도 비슷하다. 이 말이 너무 심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현실을 보면 잘못된 말이 아닌 줄 알 것이다. 진심으로 바라는 바는 우리나라의 무식하고 천하며 어리고 약한 형제자매들이 스스로 각성하여 올바로 행하며, 다른 사람들을 인도하여 날로 국민정신이 바뀌고 풍속이 고쳐저서 아래로부터 변하여 썩은 데서 싻이 나며, 죽은 데서 살아나기를 원하고 또 원하는 바이다.   건국 4237(1904)년 6월 29일 한셩감옥셔죄슈 리 승 만 긔록>


이렇게 우남은 감옥에 있을 때부터 기독교를 기반으로 한 자유민주주의 대한제국을 꿈꿨다. 자유민주주의 중에서도 그가 추구한 것은 전통적 지배체제를 살리면서도 점진적으로 변화한 영국식 입헌군주제가 아니다. 사실 오랜동안 이어온 왕정에 익숙한 우리나라에는 이런 영국식 입헌군주제가 제격일 듯 하지만 이승만의 생각은 달랐다. 전통적 지배 체제를 칼로 베듯 단절하고 새 땅으로 건너가 새 판을 짠 미국식 공화제를 선호했다. 그래야만 대를 이어서 노예처럼 일만하며 양반을 먹여 살리던 백성에게 제대로 된 헌법적 권리를 쥐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책은 유길준의 동생 유성준의 권유로 집필하게 된 것이다. 우남이 한창  영한사전 집필에 몰두하고 있을 때, 일본은 제물포와 여순에 주둔한 러시아 군함을 폭파, 러일전쟁이 터진다. 장차 대한제국의 운명은 이 전쟁의 승자의 손에 달려있는 급박한 상황이기 때문에 우남은 F까지 완성한 영한사전작업을 아쉽게 접으면서 유성준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백성을 일깨우는 이 책이 완성되면 일본 망명 중인 형이 돌아와 정부 예산으로 책을 발간해 준다기에 몰래 집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일본의 승리로 끝나자 발간은 커녕 반출도 힘들었다. 그래서 이 책은 옥중 동지 박용만이 이 원고를 꼬아 새끼줄로  위장해서 트렁크 밑바닥에 숨겨 반출, 1910년 LA의 독지가들에 의해 출판된다. 사진은 꼬인 새끼줄 원고를 풀고 있는 이승만.   


출옥한 우남은 곧장 대한제국의 밀사 임무를 띠고 미국으로 향한다. 평소 이승만을 아끼던 개화파 정치인인 민영환과 한규설은 이승만을 통해 미국에게 도움을 요청할 생각이었다. 1882년에 맺은 한미수호통상조약을 떠올리며 미국이면 대한제국의 독립을 유지시킬 수 있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속에서 지프라기라도 잡는 듯한 심정으로 우남을 밀파한다. 


이승만을 아끼는 미국 선교사들도 그의 발길을 재촉했다. 옥에서 풀려난 아들을 본 아버지 경선공도 그의 미국행을 권했다. 그 옳곧은 성미로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벌이다 또 투옥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것보다 6대 독자이지만 차라리 먼 나라로 떠나는 것이 낫겠다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딸은 오른쪽에 세우고 친손주 봉수의 손을 잡고 외손주는 그 뒤에,  곧 먼 길 떠나는 아들 내외를 옆에 두고 가족 사진을 찍었다. 


떠나기 전에 고종이 보낸 한 궁녀가 집에 찾아왔다. 폐하께서 뵙자한다고. 그러나 이승만은 그 궁녀를 따라나서지 않고 곧장 돌려보냈다. 그에게 고종은 역대 임금 중 가장 무능한 군주였기 때문이다. 부인과 아버지 사이를 왔다갔다하면서 나라를 말아먹었을 뿐만이 아니라 진심으로 애국하는 자신을 알아보기는 커녕 오히려 감옥에 가두고 혹독한 고초를 겪게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와 얼굴을 맞대고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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